가만히 있지 않고 시간을 알고 저마다 자신을 드러낸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 같아도 막상 답하려면 쉽지 않다. 모든 학문의 주제이자 실존적 고민이기도 하다. 『살아 있다는 것』 저자 김성호 선생님은 살아 있음의 열두 가지 정의를 생명과학자로서 연구했던 과학적 원리와 오랫동안 자연에서 가장 가깝게 생물들을 관찰한 다양한 경험을 담아 직관적이고 시적인 언어로 생생하게 들려준다.
저자는 집 가까운 숲을 산책하고, 한여름 숲에서 딱따구리와 새들을, 영하 25도가 넘는 철원 들판에 텐트를 치고 밤새 두루미의 잠을 관찰해 왔다. 생명에 대한 이 놀라운 애정은 어릴 적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시골 외가에 머무르며 콩과 참깨, 옥수수와 조, 쌀과 보리의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고, 콩잎을 섬서구메뚜기를, 그 메뚜기를 참개구리가, 참개구리를 먹은 가물치를 왜가리가 먹는 모습을 보며 먹고 먹히는 것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얼마 전부터 초등학생과 자연 관찰을 하며 별명이 3초였던 학생이 1시간 동안 지칭개를 그릴 만큼 변화했다는 이야기는 자연을 깊게 오래 관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저자가 가장 먼저 드는 살아 있다는 것의 특징은 따듯함이다. 아무리 추운 환경에서도 변온 동물도 죽지 않는 이상 따듯하다. 반대로 죽음은 싸늘하게 식는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은 또한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고, 움직이기 위해 먹고 소화를 하고 몸을 일정하게 덥힌다. 그런데 광합성으로 영양분을 만드는 식물과 달리 동물에게 먹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추워지면 겨울잠을 자거나 먹을 것을 찾아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데, 대부분의 철새들이 놀랍게도 매해 거의 일정한 날짜에 오간다. 즉 시간을 알고 그에 따라 사는 것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먹히지 않기 위해, 짝을 잘 짓기 위해, 또는 그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색과 냄새, 페로몬과 갖가지 소리로 표현하고 주변과 소통하는 것이 살아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는 이야기가 생생하고 흥미롭게 펼쳐진다.
더없이 섬세하며 체계적이며 역동적이다
저자는 살아 있다는 것은 더없이 섬세하며 체계적이라고 한다. 벽돌이 붙어 있는 듯 단순해 보이는 식물 세포나 아주 작은 단세포 생물들도 놀라운 질서와 체계가 있다. 살아 있는 것 중 가장 정교한 우리 몸의 작용을 잠시 살펴보자. 100조 개의 세포가 만들어지기까지 단 한 번도 건너뜀이 없는 것은 물론 각 세포가 연결되어 기관이, 기관이 모여 기관계가 되는 체계도 놀라우며 빈틈없이 소통하면서 기능한다. 고치지 않고 100년 가까이 쓰니 내구성 또한 엄청나게 강하다.
‘항상성’도 곱씹어 보면 놀라운 작용이다. 포도당 농도, 체액 내의 수소 이온 농도 지수, 체온 등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은 화학적 평형과도 비슷하다. 먹는 것이 일정하지 않지만 남으면 저축하고 부족하면 꺼내 쓰는 완충 시스템이 작동해서 만들어지는, 그야말로 역동적인 멈춤 상태이다. 물을 36도로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조차 꽤 까다롭다는 것을 환기하면 얼마나 놀라운지 새삼 느껴진다.
저자는 겉으로 고요한 것처럼 보여도 동종의 생물 간에도, 동물과 식물 사이에도 끝없이 다툼과 경쟁이 존재함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더 나은 위치, 더 많은 햇빛, 더 많은 먹이를 위해 다투고 그 다툼으로 상처가 생긴다. 아픔도 생긴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 살아 있는 것을 멈추는 법은 없다. 다툼 속에서도 공존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나아지기도 한다. 벼과 식물인 가라지조는 동물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사상균에 감염된 채로 진화했으며, 콩과 식물은 뿌리혹박테리아와의 공생을 통해 질소를 얻는다.
이처럼 모든 생명체는 살아 있는 당연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분투한다. 나아가 몸이 너덜너덜해도 강을 거슬러오르는 연어, 영하 25도 들판에서 한 마리는 무리를 위해 깨어 있는 흑두루미가 매 순간 간절하고 치열하게 살아 있는 모습을 눈앞인 듯 생생하게 들려주며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생생하고 선명하여 마음에 깊이 남는다.
내가 나인 것은 세상에 단 한 번뿐인 기적이다
『살아 있다는 것』 저자는 살아 있다는 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살아 있다는 자체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한다. 내가 태어나려면 정자와 난자가 3억 분의 1의 확률을 뚫고 만나야 한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내 부모가 만나야 하고, 그 많은 날 중 꼭 그 날이어야 한다. 4만 년 전 현생 인류가 처음 출현한 순간부터 약 1,333세대가 지날 때까지 단 한 번이라도 어긋나면 오늘날 ‘나’는 태어날 수 없다. 봄맞이꽃도 그렇다. 꽃가루를 옮기는 바람이 때에 맞춰 등장해야 하며, 싹 틔울 자리가 있어야 하며 햇빛과 수분이 적당히 있어야 한다. 살아 있는 말조개에 낳은 각시붕어의 알이 깨어나 치어가 되고 성체가 될 확률도 상상해 보자.
게다가 내가 유일한 나이듯 좁은 골짜기에 다닥다닥 붙은 수만 마리 갈매기 중 자기 가족을 알아보듯, 검은고깔나무버섯도, 굴참나무도 모든 개체가 제각기 다 다르다. 나아가 이 모든 생명체는 물질적이고 실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길가의 가로수가 뿜어낸 산소를 내가 들이마시고, 내게서 나온 이산화탄소를 아스팔트에 핀 민들레가 흡수해 광합성을 하고, 다시 나온 산소를 길고양이가 들이마신다.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분해되어 땅속에 영양분이 되듯 동물도 사람도 때가 되면 죽어 자연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적과도 같은 나 자신으로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가장 확실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김성호 선생님이 십대와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생명의 이야기를 눈으로 가슴으로 보자고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너머학교 열린교실 시리즈 스물세 번째 책
‘너머학교 열린교실’ 시리즈는 십대 청소년들과 삶을 구성하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나누고,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계를 스스로 구성하는 데 바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획되었다. 생각, 탐구, 기록, 느낌, 읽기, 믿음과 놀이, 본다는 것, 경제, 인권, 그림, 관찰, 언어와 소통, 스토리텔링, 기억, 공감, 쓰기, 묻기, 듣기, 살아 있다는 것 등 말에 담긴 새로운 의미를, 먼저 공부하고 배운 대로 살고 있는 저자들에게 묻고 그 삶의 이야기를 십대들과 나누는 ‘열린’ 교실이다.
첫 번째 책 『생각한다는 것』은 ‘2009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청소년저작발굴 및 출판지원사업 당선작’으로,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책따세)’의 2010 여름방학 추천도서에 선정되었으며, 2014년 서울도서관 한 도서관 한 책 올해의 한 책에 선정되었다. 이어 출간된 『탐구한다는 것』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2010 제7차 청소년에게 좋은 책’ ‘2010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뽑은 어린이 청소년 책’, 경기도 교육청, 서울시 교육청 추천도서로 선정되는 등 나오는 책마다 청소년을 위한 추천서, 필독서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