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어두울수록 간절해야 했던 마음속으로 가만히
“꽃이 되고 보니/참 좋더라”(「내가 꽃이 되고 보니」) 안명희 시인의 시가 발화되는 지점이다. 얼핏 나르시시즘을 떠올릴 혹자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아니다. 아주 특별한 사유, 파편화된 언어가 돌출되는 시적 전략에 기대지 않는 그는 우리가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가치들을 진정성이란 거울로 비춰낸다. 그러니까 “꽃이 되고 보니/참 좋더라”는 그의 진술은 사는 내내 “왜/웅크리고/뾰족이 있었을까”라는 회한에서 오고 그는 그 회한을 언어로 부린다. 그리고 지금 여기, 그 마음을 놓는다. “벌도/나비도/아가의 손길도/붉은 눈동자도/푸른 얼굴도//모두가 내 앞에서 웃더라”(「내가 꽃이 되고 보니」) 아름답지 않은가. 문득 뒤돌아보면 삶에 깃든 어둠이나 슬픔마저……. 그렇다. 그게 누군들 돌이켜보면 어두운 순간들이 있고 그 순간들에 꽃이나 빛을 들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가만히 “어둠의 단어들이 죽지 않게/조금씩 책장을 넘기고”(「지하 방에서 침착하게 살아가기」)며 사는 시인. 그는 “나무의 온기가 내 체온을 데우며/나무의 아주 작은 숨구멍에서/새잎이 나오는 봄을 상상한다//겨울이 다 가기까지 새잎이/떠난 자리에서 오돌오돌/떨고 싶다”(「나무처럼 생각하기」)며 어둡고 아픈 삶에 비친 자신의 마음을 언어로 다독여 공감을 이끌어낸다.
- 김 륭 시인
[시집 해설]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 안명희
류재신 박사 (남아공 노스웨스트 대학교·교육철학 전공)
안명희 시인의 삶과 시의 주제는 ‘사랑’이다. 위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옆으로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사랑한다. 온 천지를 둘러싼 자연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온통 신과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는 노래이다.
「당신을 사랑하겠어요」는 그리스도의 큰 사랑에 부르르 떨 만큼 민감하다. 낙망한 제자들을 찾아와 생선을 구워주며 격려하는 그리스도. 아무도 찾지 않는 소외된 사마리아 땅 여인을 만나 위로하는 그리스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용서하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쓴 잔을 마다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 자신의 고난은 아침 이슬처럼 가벼워 감히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못하는 슬픈 입술을 한탄할 만큼 솔직하다.
국경을 넘어/ 벧세메스로 가는 가시밭길// 멈추거나 뒤돌아보아지지 않는 암소의/ 두 어깨에 드리운/ 쓰디쓴 잔
- 「눈물 한 방울」 중에서
「눈물 한 방울」은 젖먹이 새끼를 두고도 사명 완수를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목적지 벧세메스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암소의 슬픈 눈물을 형상화한 시다. 구약 성경 암소의 슬픈 눈물을 신약 성경의 십자가에서 흘린 그리스도의 눈물과 비교한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사랑’을 그린 책이다. 시인 삶의 큰 방향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좇아가는 삶이다. 그녀는 평생을 두고 자신의 시의 우물 곳곳에서 십자가의 사랑을 길어 올린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의 고통 없이 영광의 면류관도 없다. 시인은 생명의 근원인 대지에 뿌리를 내리는 고통 끝에 빨간 동백꽃을 피우는 나무의 산고(産苦)를 이렇게 표현한다.
흙으로 가는 길이/ 멀고 고된 슬픈 일임을/ 나무는 안다//(-중략-) 이렇게 오고 가는 것이/ 너만은 아닐 텐데// 추운 겨울을 한 잎 베어 문 듯 시린 가슴은// 봉곳이 새살 돋은 동백꽃 되어/ 빨갛게 수줍어 핀다
- 「나무는 가고 꽃은 피고」 중에서
결국 봉곳이 돋은 새살처럼 아름다운 빨간 동백꽃을 피운 것은 땅속에서 인고의 세월을 견딘 나무의 희생적 사랑이다.
오늘은 샛노란 정장을 입으시고/ 나에게 오셨네요// 가을 내음 한 다발 꺾으시어/ 온몸으로 웃고서 계시네요// 이 계절을 몽땅 내게 안겨 주시네요
- 「은행나무 연인」 중에서
사랑하는 연인처럼 가을 사랑에 빠진 시인은 노란 잎이 무성한 한 그루의 은행나무를 추계(秋季) 전체로 흠뻑 받아들인다.
「주남 저수지에 오면」에서 시인은 철새, 파란 물 언저리, 버무린 햇볕, 억새, 노을, 청둥오리 등을 시구에 담아 가을 주남저수지를 눈앞에 선명히 그려낸다. 이어서 아름다운 자연 속을 거니는 연인을 통해 자연 사랑은 사람 사랑으로 연결된다.
주남 저수지에 오면/ 흔들리는 연인들의 머리카락 스치는 소리// 청둥오리 깃털처럼 반짝여/ 나는 어느새/ 그 뒤를 따라 걷고
- 「주남 저수지에 오면」 중에서
안명희 시인은 「산 그늘 아래 벚꽃」, 「별」, 「노을」, 「꽃도」 등에서 아름다운 자연 사랑을 노래한다.
사랑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잊혀짖 않는사랑 받고 싶다// 오래 두었던 것들을/ 서랍에서 꺼내며/ 깃털이 내려오듯/ 등 가벼운 그런 사랑 느끼고 싶다// 묻혀지고 싶은 것들을/ 그냥 묻혀두자고 할 때/ 말없이 눈빛 나누는/ 편한 사랑 하고 싶다
- 「서랍에서 꺼내다」 중에서
이순(耳順)을 훌쩍 넘긴 내가 아는 안명희 시인의 삶은 평생 그렇게 사랑받고 싶고, 사랑 느끼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다. 성경을 좋아하고, 예배를 사모하고, 사람 만남을 좋아하고, 김치며 나물이며 밑반찬 나누어주기를 좋아한다. 몸이 약하고 마음이 아픈 사람을 보면 그냥 스쳐 지나가지 못한다. 가까이 다가가 손 내밀고 등 두드려주고 기도해 준다. 자연 속의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도, 반짝이는 우물 속 물방울 하나에도 깊은 사랑을 준다. 결국 인생은 사랑이다. 사랑만 하고 가기에도 짧은 인생, 아등바등 싸우고 미워하고 한을 품고 산다면 얼마나 허망한지 시인은 안다. 그래서 다 품고, 다 참고 다 용서하며 사랑한다. 시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그 사랑을 절절히 통감하고 배운다. 그래서 시인은 무엇을 보든 사랑으로 녹여낸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자연 사랑을 넘어 자기 사랑에게까지 나아간다.
사랑하겠어요/ 내가 겪는 고난이 아침 이슬처럼 가벼워/ 당신을 사랑한다고/ 차마 고백 못 하는 입술로// 그래서/ 나는 / 슬퍼합니다// 당신을 사랑하겠어요
- 「당신을 사랑하겠어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