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익의 시에서 나타나는 지향은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 발견의 소중함과 자연의 풍취에서 존재의 풍정으로 나아가려는 서정적 발걸음을 돋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시적 지향을 벼리고 있는 존재에게 자아는 소중하고 종요로운 시적 화두이자 생각과 에스프리(esprit)의 발판이 된다.
다의적인 해석과 추측의 가늠자가 되어주는 김영익 시인의 구문(構文)들로 인해 우리는 시의 영역 속에서 삶을 그윽하게 톺아가기에 이른다. 시인의 이러한 통찰력은 시가 형이하학이냐 형이상학이냐를 떠나 삶의 본질에 한 발짝 다가드는 질문의 가치를 열어준다. 특히 기억과 풍경과 마음의 미래를 노래한 김영익의 시편들을 보고 있으면 풍경의 오롯함과 기억의 아련함과 따뜻한 상상의 훤칠함이 서로 갈마든다. 그리하여 시란 글자로 보는 그림이라 했거니와 인상적 풍경이 자아내는 동경의 헤테로토피아(hetorotopia)는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곁에 기억의 잔물결로 시인의 발등을 적시며 찰랑댄다.
김영익의 시에서 서정의 입시울이 마를 날이 없는 것은 그가 자연과의 교감을 항시 갖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제 자연은 별스러운 외계가 아니라 시인의 존재를 반영하는 일종의 진설된 거울의 형태로 현존하기에 이른다.
- 유종인(시인⸱미술평론가)
공감
누구나 마음속에는
뭔가를 길어 올리고 싶은
두레박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터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가
뭐라도 길어 올려 주고 싶은 건
내 마음속 두레박도 누군가
길어 올려 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네 우물가를 서성대다
내 두레박을 떨어트린다
버려진 양수기
언제부턴가 나는
논두렁 한쪽에 버려진 채
세월만 파먹는 몰골로 남았다
속 꽉 찬 울음을
한 번은 터트리고 싶었으나
바람이 만류하여 참았다
이젠 고철로도 취급받지 못하고
그냥 버림을 받아버린 생
누구를 탓하랴
이승에서 잔여의 나날들아,
이젠 안녕이다
샛바람이 선사하는 풍장 속으로
나는 들어간다
어느 추모일 즈음
잿빛 구름이 내려다보이는
심학산 둘레길을
네가 남겨준 모자를 쓰고 걷는다
이때쯤 발길은
언제나 네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숲길 너머에서 너는 하회탈을 쓴 채로 불쑥 나타나
괜찮다, 괜찮다 말할지 모르겠지만
저 하늘에 별 하나 정도는
진작에 사놓았어야 잊어갈 수 있는 일들이
어디 그리 맘먹은 대로 되던가
네가 그곳으로 일찍 간 것은
거기서 이곳의 일들을
느긋이 지켜보고 싶어서였겠지
너 없어도 잘 돌아가는 세상에
더는 야속하다 하지 말게,
내 아직 예 있으니
배웅
해 질 녘
여의나루에서 바라본
한강 하류의 수평선이 들떠 있다
빛이 어둠을 낳아 기르는 건지
어둠이 빛을 죽이는 건지
난 잘 모르겠다
물 위에 뿌려진 금빛 가루가
생멸, 생멸, 생멸, 구령을 붙여 가며
하염없이 파닥거린다
저 멀리 색조 화장을 한 63빌딩이
관촉사 미륵보살님처럼 서서
강물을 배웅한다
! 보따리
탁탁,
!로 네 머리를 두드린다
언제부터인가 네 마음은 얼음장,
한번은 !로 금가게 하고 싶다
톡톡,
!로 네 가슴을 토닥인다
오늘도 화양연화가 올 거라 믿는 너,
! 하나를 내려놓고 돌아간다
툭툭,
!를 네 발 앞에 떨어뜨린다
다시 행복을 되찾아야 할 너,
이젠 !를 네 스스로 주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