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데뷔 후의 현실
-작가 생활 ‘절망’ 편
4년 차 소설가 이서현의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장편소설 『펑』이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영상화 판권까지 팔린 것이다. 포기하려던 순간 마법처럼 당선 전화를 받았던 그날의 이야기로 이 책은 시작된다. 그러나 그토록 바라던 소설가 타이틀을 거머쥔 뒤에도 꿈꾸던 작가 생활은 여전히 멀게 느껴졌다. 수상작이라 해도 그 책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고,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기댈 곳은 없었다. 상을 받고 데뷔를 하면 무언가 달라질 줄 알았지만 작가가 되기 전에도, 작가가 된 지금도, 잡힐 듯 말 듯한 ‘가능성의 세계’에 살고 있는 기분이다. 무엇이든 쓸 수 있을 것 같았던 패기가 사라지자 오히려 무엇도 확신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한 딴짓의 목록에 에세이 쓰기도 들어가 있었다. 소설만 써 왔으니 에세이 쓰기는 어쩌면 가장 큰 딴짓이었다. 일기이기도 낙서이기도 한 글을 쓰다 보면 다시 소설을 쓸 힘이 생기기도 했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작가라는 직업만 보고 달렸는데, 작가가 되고 나니 시종일관 다른 직업을 찾는다. 물론 상상 속에서.”
_본문 중에서
어떤 직업이든 그만의 불안 요소가 있겠지만 점점 더 줄어드는 독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소설가의 입장은 좀 더 절박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쓰는 글이 읽을 가치가 있는지, 글을 쓰는 것만으로 과연 작가라 할 수 있는 건지 끊임없이 의심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방황의 시기를 지나온 소설가의 데뷔 후 분투기다. 업계 사정을 잘 모르는 채로 이른바 ‘문단 장사’를 겪으며 글쓰기 노동자의 세계에 발을 들였고, 신인 작가를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몇몇 빌런을 거쳐 마침내 스스로 중심을 잡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업 작가의 사사로운 일상과 업계의 현실이 궁금하다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책장을 펼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쓰는 이유
-작가 생활 ‘희망’ 편
첫 장편과 소설집 출간 이후 영화 각색, 드라마 대본 작업, 웹소설 연재까지 여러 장르를 두루 경험하고서 작가가 내린 결론은 결국 소설이었다. “소설이 좋은 이유는 소설을 쓴다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글 쓰는 삶 자체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글이 구릴까 봐, 그게 가장 두렵다고 고백한다. “내 안의 이야기를 다 꺼낸 뒤 마침표를 누르는 홀가분함 때문에”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추측하며 ‘어떻든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자기 안에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비슷한 심정으로 같은 길을 걷고 있을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마음으로 일러 준다. “글의 미덕은 언제나 한 걸음 나아가는 데 있는 법”이고, “그 과정이 조금 볼썽사납더라도 괜찮다”고.
“눈부신 성공을 겪지 못했어도, 가끔은 찌질하기까지 해도, 그래도 꿋꿋이 써 나가는 이야기, 그래도 괜찮다는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필요할 것 같았다. 바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일까. 에세이를 쓰는 동안 나는 글이 조금 더 좋아졌다.”
_에필로그 중에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자신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이러나저러나 이 일을 그만둘 마음”이 없다면 막연한 불안감에 떨 시간에 한 줄이라도 더 쓰는 게 낫다.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어 초조해하다가도 그래서 재미있는 것 아니겠냐고, “오늘은 죽을 것 같아도 내일은 살맛이 날지 모른다”며 다시 책상 앞에 앉는 이서현 작가처럼. 불안해서 쓴 글들이 모여 『가능성의 세계』가 된 것처럼.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일말의 환상조차 깨부술 기세로 녹록지 않은 현실을 토로하다가도 기어코 글 쓰는 일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고 마는 유쾌한 이야기의 끝에는 작가의 노트북 속 ‘미완성 폴더’에 잠들어 있던, 죽을 때까지 공개할 일 없을 줄 알았던 미완성 소설도 한 편 수록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