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에서 조선, 나아가 한말(韓末)까지,
시는 물론이요 전과 평론까지,
대한민국, 북한의 개성, 중국의 남통까지
연암 박지원, 자하 신위, 익재 이제현을
비롯한 우리 고전지식인을 비롯해
안중근과 같은 지사들의 삶까지도 글로 썼고
홍명희, 이승만, 신익희 등에게 시를 주거나 남겼으며
조긍섭, 하겸진, 문박, 황원 등의 지식인들과도 글을 주고받았던,
한국고전지성사를 아우르는 지식인,
소호당 김택영을 읽다
김택영은 자신의 최초 시문집은 물론 최후 시문집에도 ‘소호’라는 이름을 붙였다. 소’는 순(舜)의 음악이고 ‘호’는 탕(蕩)의 음악으로, 이른바 성인의 시대에 불렸던 태평성세의 음악이란 뜻이다. 김택영은 자신의 처지를 넘어설 삶의 비전으로 그 말을 선택한 것 아닐까. 저자는 그의 뜻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창강’이라는 호칭을 그대로 두었다고 말한다. 그 글을 쓸 때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편집된 순서대로 집필되지도 않았다. 저자는 이 역시 부끄럽지만 그대로 드러내었다고 말한다. 모두 저자가 밟아온 길이었기 때문이다.
“맞다. 나는 김택영은 물론 그가 알려준 세계를 애틋한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의 글에서 마치 쓰러질 듯 비틀거리고 한번도 원하지 않았던 배척을 당하면서도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되 비굴하게 나약하지 않고 굳건하며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과 마주하는 꼿꼿함을 읽었음이 기억났다. 가끔은 속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흐릿한 화면들, 그리고 왠지 모를 그리움을 안은 채 그렇게 그가 열어준 세계를 마주하고 있었던 듯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독자들이 소호당 김택영을 통해 복원되기 시작한 송도지성사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져주시길 기원해본다. 그러면 나는 소호당에게 덜 미안할 듯싶다.” - 프롤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