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화가 고야의 판화 작품에는 ‘잠자는 이성은 괴물을 깨운다’라는 의미심장한 부재가 붙어 있다. 그림에는 한 남자가 사유를 멈추고 잠들어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성이 잠에 빠지자 괴물로 상징화된 박쥐와 올빼미가 나타나 사회를 혼란에 빠트린다. 화가는 지배 권력자를 중심으로 한 부패와 전횡을 고발하며, 이성이 잠을 자고 있는 현실을 반성하자고 주장한다. 이성이 잠들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독선과 이기심, 비겁함, 현혹, 굴종이 그 자리를 무섭게 파고들기 때문이다. 희곡 〈피바람뎐〉은 욕망에 사로잡힌 TV 드라마 작가를 통해, 자신의 힘과 지위를 이용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괴물과 그 괴물에 기생하며 배를 불리는 나약하고 추악한 인간을 그린다. 실제 세상과 드라마속 세상이 깨어있는 우리의 이성에 의해 구원 받기를 바라며 희곡 〈피바람뎐〉의 첫 장은 펼쳐진다.
시놉시스
TV 드라마 작가 한서린. 그녀는 소위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 드라마의 대표적인 작가다. 그녀가 집필한 드라마는 매번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데, 불륜, 납치, 협박, 기억 상실, 출생의 비밀, 배신, 복수, 온갖 재료들이 난무하는 싸대기 쇼가 단골 소재다. 현재 방송중인 드라마 〈너나 잘해〉 역시 시청률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드라마 종영을 단 한 회 남기고 한서린 작가가 깜쪽같이 사라진다. 최근 막장 드라마 퇴출 운동 때문에 비관해 투신했다는 설, 원한에 의한 납치설, 본인이 쓴 막장 드라마처럼 산 넘고 물 건너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는 조롱 섞인 말 등 온갖 억측이 난무한다.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같이 작업하던 배우와 스텝을 불러 참고인 조사를 한다.
그들의 진술이 시작되자 놀라운 사실이 하나 둘 밝혀진다. 높은 시청률 뒤에 숨겨진 한작가의 추악한 민낯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작가는 높은 시청률을 무기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고, 그녀 앞의 약자들은 비굴했으며 기생하던 자들은 배를 불렸다. 그녀는 드라마 속 세상뿐만 아니라, 실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도 더럽히고 있었다.
진술이 끝나갈 무렵, 놀라운 소식 하나가 전달된다. 실종된 한작가가 드라마 최종회 대본을 메일로 발송한 것이다. 결국 전파를 타게 되는 막장 드라마 〈너나 잘해〉의 마지막 회. 시청자들은 상상도 못한 드라마 결말에 경악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