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할 것인가?
원시 시대에 인간은 수렵, 채집 활동을 통해 의식주 위주로만 생존했다. 현대에 이르러 문명이 발달하면서 편리하고 세련된 것들이 많아졌다.
경제적 능력을 갖춘 인간은 스스로 식량과 먹이를 채집하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편리한 만큼 경쟁이 가속화되었기에 세상에 만만한 일이 없어졌다. 우수한 인원들은 부의 세습을 뛰어넘어 스스로 경쟁력을 확보한다. 하지만 그 비중은 극히 일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제한된 기회에 도전하고, 그 결과 성취하는 자들도 일부 있다. 하지만 선택을 받지 못한 많은 사람은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유아기,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어른의 보호를 받고, 일부는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라난다. 저마다 다른 가정에서 대를 보내고 20대, 30대를 거치며 우리는 수많은 실패와 실수를 반복한다. 그 이후에 40대, 50대를 지나면서도 역시 다수의 시행착오를 경험한
다. 어릴 때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모습도 많은 경우, 점차 잃어 가게 된다.
세상을 알아가면서 경쟁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된다. 자신을 알아주는 편안한 친구나 가족과 있을 때는 잠시 안도하며 정신적으로 휴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외에 그렇게 우리를 이해해 주고 격려해줄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긴장하고 더 노력하라”라는 말로 충고하는 사람이 주위에 더 많을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편안함보다는 긴장과 어려움을 느끼는 상황들 속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위로가 필요하다. 아무 조건 없이 내 편이 되어줄 무언가가 우리는 늘 필요하다. 그것이 친구든, 취미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혹은 종교이든 말이다. 또는 그것이 독서, 산책, 음악 감상, 영화 감상 혹은 스포츠가 될 수도 있다. 언제나 곁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그 누군가가 필요하다. 꼭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더라도 고충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만 있어도 충분한 위로가 된다. 힘들고 답답할 때, 나의 사연에 경청해 주는 친구 한 명만 있어도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평범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다. 사춘기 시절에는 가정불화, 불안정의 이유로 방황하기도 했다. 10대 후반에는 아버지의 거듭된 음주와 무기력함을 목격했다. 군 제대 이후에는 빠르게 자립하고자 우유 및 신문 배달, 주유소, 과외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20대에는 여느 학생들처럼 장학금을 받기 위해 대학교 도서관에 늦게까지 틀어박혀 있기도 했다. 해외에 나가고 싶은 꿈이 있어서 외국어 공부에 도전했고, 운 좋게 원하는 회사에 들어갔다.
30대 초반에는 경험 미숙, 짧은 식견, 젊은 혈기로 요약되는 회사 생활을 했다. 농부의 아들로 자라 아직 세상에 대응할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마주한 조직 생활은 다소 이해가 안 되는 상황들이 많았다. 마음의 상처를 자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인생의 모토로 삼았다. 자연스럽게 몇 번의 이직, 전직, 사업을 경험하면서 점차 회사 생활이 만만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자신이 참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래도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가능하면 무엇이든 망설이기보다는 도전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실수로 인한 부끄러움보다는 도전하지 않는 안이함을 없애려 노력했다. 시도가 많았던 만큼 실수와 실패도 많았다. 내로라하는 좋은 직장에서의 몇 번의 이직도 있었다. 그 결정에는 더 경험해 보고 싶은 욕심과 학습하고자 하는 열의도 있었다.
최근에는 그 무엇보다 스스로의 행복과 마음가짐이 중요함을 느낀다. 어느 때이건 자신만의 기준과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좌충우돌의 과정 속에서 가장 부족했던 것은 나의 마음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일찍 알지 못했음이 아쉽기도 하지만 오늘이 행복하다고 느껴지니 괜찮다. 물론 척박하고 어려운 삶의 순간 속에서 치열하게 고독과 고난의 시간을 보낸 적도 많다. 모두가 그런 것처럼 내 인생 역시 눈물을 머금고 인내한 인고의 시간이 많이 있었다.
그래도 세상 그 무엇에도 아픔과 진통 없이 성장한 것들이 없을 테니 위로가 된다. 여전히 매일 세상과 부딪히고 도전하면서 살아간다. 바빴던 3040의 시기가 이제 지나갔다. 40대 이후에는 다소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다만, 40대 중반부터 우연한 기회로 독서에 집중하게 되었다. 중년의 나이에도 무엇인지 모를 목마름, 채워지지 않은 인생의 조각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다양한 책들에 한동안 빠져들고 나니 기존의 혼란한 생각들이 정리가 되어간다. 또한 선인, 현자, 위인들의 말씀과 함께 나의 기준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비로소 공자의 50세 지천명(知天命)을 새롭게 느낀다.
누구에게나 고난과 상처, 행복과 불행이 찾아온다. 순서와 개수, 정도만 다를 뿐이다. 보통의 우리들이 그러하듯, 나도 오랫동안 크고 작은 상처를 받으면서 살아왔다. 한때는 참 지독하고 힘든 아픔의 터널 안에 갇혀 있었다. “이렇게 삶을 영위하기보다 그만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 적이 꽤 있다. 그때마다 어머니, 아내, 친구나 신앙, 해야 할 일 등의 이유로 그만하지 못했다. 이렇듯 나를 이해해 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버틸 수 있다. 그 순간을 넘기면 좀 나아지곤 한다. 어두운 터널을 가까스로 벗어난 후부터 자기 효능감을 찾으려 하고 있다. 나의 가치와 존재의 아주 작은 이유라도 찾아가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조금씩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알아간다. 반평생을 스스로와 가족을 위해서 살았으니 이제 남은 생애는 조금이라도 세상과 더 소통하며 살고자 한다. 팍팍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분들에게 작게나마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공감하고 싶다.
이제는 꼭 일류나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어지고 평범한 것이 좋아졌다. 일류보다는 이류, 삼류도 좋다. 편안함과 의미만 있다면 충분하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의 상처 치유법, 또는 생각을 공유하면서 이 땅의 상처받은 분들에게 위로와 공감이 되고자 한다. 이미 여러분도 충분하게 고생했다. 수고 많았으니 잠도 푹 자고 쉬기도 하자. 그리고 한 발 더 내딛자. 조금만 힘내자. 불완전하고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 우리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의 작은 행복을 찾자. 우리 인생은 아름답고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