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과 절제의 시 형식을 통해서 함축적인 시상을 전개하고 있는 이영신 시인의 작시술은 현대적 욕망의 세계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시의식을 반영한다. 이러한 시의식으로 인해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주요한 시적 제재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은 삶의 곤궁과 곤혹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기제로 작동하는데, 탈속의 자연은 피폐한 현대인의 영혼에 연민과 공감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은 놀랍게도 예술적 경지로 승화될 때, 종교적 신성의 영역을 보이기도 하며 진정한 자아의 발견이라는 깨달음을 야기하기도 한다. 시집 후반부에는 자연이 했던 역할을 고전의 세계가 대체하는데, 고전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비롯하여, 세속과 출세간,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등의 이원적 대립을 해체하고 무화함으로써 영혼을 정화하고 종교적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해석과 고전에 대한 재해석이 피폐한 현대인의 삶에 자양분을 제공하고 정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