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뿌리 찾기
이 책은 우선 진화의 개념에서 시작해 인류 진화를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 및 명명과 분류의 문제를 자세히 다룬 다음, 인류 진화의 시간과 환경적 배경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고, 이후 다양한 고인류의 등장과 진화에 대해 단계적으로 서술한다.
20세기 말 활발해진 유전자 분석으로 고등영장류의 분류체계는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때까지 영장류의 분류는 해부학적 기준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러나 유전자 분석 결과 침팬지는 고릴라보다 오히려 사람과 더 가까운 영장류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런 상식을 벗어나는 의외의 결과에 따라 새로운 분류체계가 수립된다. 그동안 침팬지는 사람 상과 중 사람 과와는 다른 고릴라 속, 오랑우탄 속과 함께 유인원 과에 속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1990년대 이래의 분류체계에서는 사람 과 중 오랑우탄아 과, 고릴라 아과와 구분되는 사람 아과 중에 사람 족과 구분되는 침팬지 족으로 분류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오랑우탄과 고릴라는 훨씬 일찍 사람-침팬지 그룹과 갈라졌고, 침팬지는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갈라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은 누구이며, 언제 지구상에 처음 등장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해 왔을까. 고인류학계는 아프리카 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발굴된 화석자료 분석을 통해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내놓고 있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설명 체계는 아직 없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발굴된 화석자료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인 뼈와 이빨이 주로 파편 형태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인체의 일부만 가지고 전체의 모습과 생활방식을 파악해 내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새로운 화석이 발견되면 기존의 이론은 수정이 되고, 화석에 대한 해석과 명칭도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기도 한다.
새로운 ‘사람 속’ 데니소바인과 플로레시엔시스
지난 6년 동안의 고인류학 연구로 보태지고 수정된 이론과 해석과 명명만으로도 책 한 권이 족히 될 법하다. 『인류의 기원과 진화』 제3판에는 곳곳에 새로운 연구 결과가 보충돼 있다. 이 기간 가장 눈에 띄는 연구는 데니소바인의 원적 찾기일 것이다. 분류학상 사람은 동물 계 - 척삭(척추)동물 문 - 포유 강 - 영장 목 - 사람 과 - 사람 속 - 사람 종이다. 영장 목에 속한 포유류를 영장류하고 한다. 새로운 분류체계에서는 사람 과를 사람 족과 고릴라 족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사람 족에 속한 것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과 사람(homo) 속, 파란트로프스 속이다.
많은 이에게 익숙한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현생인류), 네안데르탈은 모두 호모 속에 속한 종이다. 고인류학 연구는 호모 속 종명을 10여 개 이상으로 늘렸다.
2010년 시베리아 알타이산맥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네안데르탈과 사피엔스 사이에 교배가 이뤄졌다는 화석이 발견됐다. 이때 함께 채취된 뼈 조각 7점이 사람 속(호모 속)에 속하는 것으로 분석돼 ‘데니소바인’으로 명명됐다. 2019년에는 티베트에서, 2024년에는 라오스에서 데니소바인 화석이 발견됐다. 유전자 분석 연구에 따르면 데니소바인은 28~29만 년 전에서 2~3만 년 전 사이에 주로 아시아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아시아에서 새로 밝혀진 사람 속에는 ‘플로레시엔시스’ 종도 있다. 2003년 인도네시아 동쪽 플로레스 섬의 ‘리앙부아’ 동굴에서 발견됐다. 이들 화석의 몸집과 두뇌 용량은 현대인이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훨신 작은 것으로 분석됐다. 학계에서는 섬에 고립돼 도서왜소증 현상이라는 가설과 병리학적 문제로 비정상적으로 왜소화한 호모 사피엔스라는 주장이 맞서왔다. 2013년 리앙부아에서 70㎞ 떨어진 마타멩게에서 플로레시엔시스의 조상이 될 만한 70만 년 전 화석이 발견되고, 2024년 8월 이 화석이 플로레시엔시스보다 더 왜소한 체구의 성인이라는 사실이 발표돼 도서왜소증 가설이 가장 유력한 설명이 됐다.
종간 교배와 속간 공존의 증거들
학교 교과서 ‘상식’으로는 사람 속에 속하는 고인류 종으로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 사피엔스 정도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초고속으로 진화하고 있는 고인류학 연구는 고인류 종이 훨씬 많으며, 종간 교배도 이뤄졌다는 증거들을 발견해 냈다.
1856년 독일 네안데르 계곡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 화석은 고인류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사람 속의 한 종이다. 네안데르탈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여전히 분분하지만 사피엔스와 같은 시기에 공존하면서 상호 교배에 이르기도 했다는 새로운 연구 성과들이 쌓이고 있다.
2010년 데니소바 동굴에서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 사이에 생물학적 접촉의 증거가 발견되고, 유라시아 거주 현대인에게 네안데르탈 유전자가 적게는 전체 유전자의 1%에서 많게는 7.9%까지 남아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아프리카 거주 현대인에게서도 0.3~0.5% 정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급기야 2024년에는 거꾸로 네안데르탈 화석에서도 사피엔스의 유전자가 검출됐다는 보고가 발표되기도 했다.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과의 첫 교배 시기에 대한 연구도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2024년 12월 독일과 미국 연구팀은 각각 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에서 아프리카를 떠난 사피엔스와 유럽에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 사이에 교배가 4만9천~4만5천년 사이에 이뤄졌으며, 7천여년간 두 종간 혼혈이 계속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사람 속이 종간 교배를 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속과도 공존했다는 증거들도 나오고 있다. 2024년 12월에는 미국 피츠버그 채텀대 등 국제 연구팀이 학술지 〈사이언스〉에 150만 년 전 지금의 케냐 투스카나호수 인근에서 사람 속의 호모 에렉투스와 파란트로푸스 속의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서 너 명이 길어봤자 수 시간 이내의 짧은 시차를 두고 불과 1m 정도 떨어진 거리를 두고 걸어갔음을 보여 주는 발자국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