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테스트의 시초
갤럽 교수는 거울을 접해본 적 없는 침팬지 네 마리를 대상으로 거울 자기 인식 실험을 진행했다. 네 마리 모두 처음에는 거울 속 대상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이윽고 그 모습이 자신이라는 걸 꺠달았는지 거울을 들여다보며 거울상을 찬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열흘 뒤, 교수는 침팬지들을 마취하고 이마에 빨간색 마크를 표시했다. 마취에서 깨어난 침팬지들은 표시를 눈치채지 못했는데, 거울을 들여다본 후 네 마리 모두 자기 이마의 마크를 만졌다. 동물이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증명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마크 테스트’였다.
갤럽 교수 이후 영장류 외 동물을 대상으로 한 마크 테스트가 줄을 이었다. 큰돌고래와 아시아코끼리, 심지어 까치까지 마크 테스트에 통과했다. 그러나 실패 사례도 많았다. 거울의 속성을 이해한 동물들은 많았지만 그를 통한 자기 인식을 증명한 경우는 드물었다. 개도 고양이도, 돼지도 앵무새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인식이 이처럼 ‘똑똑한 동물’들만의 특질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저자는 그간 ‘똑똑한 동물군으로 분류된 적 없는’ 물고기의 거울 자기 인식 실험을 성공해 보인다. 물고기에게 인간, 대형 유인원과 같은 자기 인식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낸 것이다.
물고기에게 거울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생생하고도 치열한 실험의 현장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저자는 실험 전과 과정, 그리고 이후 해석의 단계까지 세세히 설명하며 자기 실험의 독창성과 원칙성, 논리성 등을 확고히 해나간다. 실험의 치밀함은 여전히 물고기의 지성을 의심하는 세상의 회의적 시선에 대한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과학적인 대응이다.
마크 테스트를 물고기에게도 실행하기로 한 저자는 다른 물고기의 표면에 붙은 작은 기생충을 떼어내 먹는 청줄청소놀래기를 그 대상으로 삼았다. 자기 몸에 무언가가 붙어 있거나 묻어 있을 때 그것을 예민하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실 수조에 충분히 적응한 청줄청소놀래기는 이후 거울과 대면한다. 첫날, 그들은 거울상을 세차게 공격했지만 2~3일 차에는 공격 시간이 크게 줄었다. 3일 차 무렵에는 갑자기 배를 위로 한 채 헤엄을 치는 등 거울상과 자기 행동의 수반성을 확인하는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였다. 7일 차가 되면서는 공격 행동을 멈췄다.
이제 본격적으로 마크 테스트에 들어갈 차례다. 청줄청소놀래기를 마취한 뒤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턱 밑에 그들이 떼어내고 싶어 안달을 낼 수밖에 없는 ‘기생충’을 닮은 갈색 마크를 표시했다. 마취에서 깨어난 청줄청소놀래기는 자신의 턱 밑에 마크가 생긴 줄도 모르고 평소처럼 생활한다. 그러다 거울을 보게 된 청줄청소놀래기는 턱 밑의 갈색 흔적을 발견하고는 다소 어색한 몸짓으로 모랫바닥에 턱 밑을 비비댔다. “턱을 바닥에 문지르는 행위는 영락없이 턱 밑에 붙은 기생충을 바닥에 깔린 모래에 비비대 떼어내려고 하는 모습이었다.” 물고기가 거울에 비친 대상을 자신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증명된 순간이다.
비판과 고정관념에 맞서기
새로운 발견이 겪는 최초의 운명은 거부와 부정이다. 저자와 연구팀은 의기양양하게 세상에 실험 결과를 공개했지만 곧 비판이 따라왔다. 특히 자기 인식을 할 수 있는 동물은 인간과 유인원뿐이라는 주장을 견지하는 갤럽 교수의 지적은 큰 산이었다. 갤럽 교수는 실험 개체 수가 적다는 점, 청줄청소놀래기가 턱 밑을 비비댄 게 아니라 턱을 더 잘 보려고 했던 행동이 그렇게 비친 것뿐이라는 점, 거울상을 이웃으로 인식해 그에게 정보를 준 것뿐이라는 점, 갈색 마크가 마취 당시의 촉각 자극을 상기시킨 것뿐이라는 점 등을 들어 실험 결과를 부정했다.
저자는 지적을 기회 삼아 연구에 다시금 정진한다. 그러고는 갤럽 교수의 모든 지적을 빈틈없는 실험 결과로 반론한다. 아울러 물고기의 개체 인식, 자기 인식 능력이 인간과 별도로 진화하지 않았다는, 고생대 경골어류 대에서 진화한 자기 인식 능력, 타자 인식 능력, 자아의식이 육상 척추동물과 인간에게 전해졌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얼굴 인식 상동 가설’ 그리고 ‘자아의식 상동 가설’이다. 다소 급진적인 주장처럼 들릴 수 있으나 책을 읽으면 그가 내민 타당한 근거에, 실험 결과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물고기에 대한 애정, 관심과는 별개로 그의 실험은 일찍이 정해둔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억지스러운 여정이 아닌 지난하고도 성실한 여정 끝에 다다른 새로운 진실로써 설명된다. 이 책의 끝에서 독자는 “물고기도 생각을 한다” “물고기도 자기를 인식한다”라는 일차적 사실을 알게 되는 동시에 “인간만이 사고의 주체가 아니다”라는 더 크고 본질적인 진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될 것이다. 이 같은 합리적 사고의 확대가 이 일기, 이 책이 가고자 한 최종 목적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