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안중근 세계의 안중근
“죽음은 두렵지 않다.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의 이성과 심장은 너희들에 의해 병들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의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이 말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일본에 체포되어 첫 심문에서 한 진술로, 그해 11월 러시아의 한 일간신문이 보도한 내용이다.
안중근 의사는 재판 과정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유를 정연한 논리와 당당한 태도로 조목조목 진술했는데, 그의 진술에 감복한 일본인 변호인은 이렇게 변론했다.
“그의 범죄 동기는 지식 결핍과 오해에서 나왔다고 할지라도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지 않으면 한국은 독립할 수 없다는 조국에 대한 참된 마음에서 나온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옥중 자서전에서 〈동양평화론〉까지
안중근 의사는 32년의 짧은 생애 동안 불의에 당당하게 맞섰고, 조국애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평화 구현을 위해 역동적인 삶을 살았다. 독실한 신앙인이자 교육자이고, 사상가이며 의병장으로서 시대가 요구한 민족적 과제 앞에 온몸을 던졌다. 그가 옥중에서 남긴 〈동양평화론〉과 200여 점의 유필은 지금도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또한 옥중 자서전은 그가 1909년 10월 26일(음력 9월 13일) 상오 9시 30분, 하얼빈역에서 대한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뤼순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동안, 그해 12월 13일에 집필하기 시작해 이듬해 1910년 순국하기 열흘 전인 3월 15일에 탈고한 것으로, 93일 동안 옥중에서 집필한 것이다. 이 글 안에는 그의 삶은 물론 그가 마주한 현실, 그 안에서 그가 이루려 한 꿈이 그대로 담겨 있다.
천국에서도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니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자 나라를 위해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해,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모아 공을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으로 안중근 의사의 삶과 뜨거운 가슴을 읽으며, 나라가 위난에 처했을 때 우리의 선열들이 어떻게 싸워 나라를 지켰는가를 되돌아보고, 그로써 국가와 민족이라는 공동체의 소중한 의미를 새롭게 되새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