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초 시인의 시조 세계는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선사시대의 모습, 고구려 유적에서 살핀 웅혼한 기상, 곤고한 민초들의 삶과 그 한 맺힌 죽음에 대한 위로, 엘니뇨 현상을 통한 현실비판, 회화와 조각 작품의 시적 재구성 등을 통해 자신의 관심을 확장하고 있다. 단시조와 연시조, 사설시조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형식 안에서 다채로운 주제를 반영하는 시조 창작에 전력을 다해왔다. 생명의 신비와 접맥된 에로스 담론 전개, 기후 환경 문제, 맛깔스러운 전라도 방언의 감칠 맛 나는 운용, 내면세계와 존재론적 성찰, 미술세계와의 내밀한 접맥과 교감, 그만의 시어 사전에 등재된 활기찬 언어들의 약동 등을 통해 시조 세계를 넓히고 깊이 파고든 시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박시교 시인은 시어 면에서나 형식 면에서나 작위성을 배격하면서 시적 아름다움과 깊이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그의 시는 아프고 암담하고 막막한 일상 위에서 존재 확인과 초월을 노래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러한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관습의 틀에 묶여 있지 않고, 우리 삶의 보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새로운 감각으로 기존의 정서를 확장시켜 나간다. 초기작인 「겨울 강」은 사람의 근원적인 문제에 시각을 집중하여 사뭇 도전적이고 활달한 시상 전개로 존재론적 성찰의 세계를 긴박감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도저한 정신세계는 하나의 중요한 동력이 되어 이후의 작품 속에 면면히 이어진다. 「겨울 강」은 헌걸차고 웅혼한 흐름과 돌올한 정신세계의 한 표상이다. 어떠한 환난이나 역경도 일거에 거뜬히 물리치게 하는 역동적인 힘 즉 집약적인 주제 구현의 양상을 보인다. 「이별 노래」 역시 절창이다. “봄에 하는 이별은 보다 현란할 일”이라는 첫 줄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자연에 투영된 슬픔의 정조가 절묘하게 표현되어 가슴을 내리친다. 이러한 예사롭지 않은 미학적 성취로 인하여 「이별 노래」는 끝나지 않을 사랑 노래이다. 눈물겹도록 슬픈 「이별 노래」를 통해 시인은 만인의 심금을 울린다. 서정시의 한 극치를 보여준다.
이우걸 시인의 시조 특성은 그 대상이 전통시조가 노래한 대상이 아니라 현대적 감각, 현대적 상상으로 노래한다는 점이다. 전통시조가 주로 대상으로 삼은 경우는 이른바 자연이다. 물론 이우걸 시인의 시조에도 자연을 노래한다. 그러나 그는 자연보다는 문명을 대상으로 하고, 자연을 대상으로 할 때도 전통적인 인습적인 상상력을 벗어난다. 이우걸 시인의 미학적 성과 중 하나로 새로운 이미지의 발화와 다채로운 직조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세계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시조에서는 현대인들의 의식과 생활, 관계에 대한 복잡 미묘한 정서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앞선 자각과 시도로 문명 비판과 노동자가 처한 구체적이고 절박한 삶을 형상화한 세계는 동시대 시인들 보다 앞서 궁구하고 천착하면서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승훈은 이우걸 시인의 시 「팽이」를 두고, 이 「팽이」는 고통을 건너가는, 그러니까 초월, 수직적 넘기가 아니라 수평적 건너기를 통해 그가 기다리는 아름다운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수직적 초월은 초월주의, 정신주의, 신비주의와 통하나 수평적 건너기는 그런 주의를 부정한다. 이런 부정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 팽이의 극한에는 접시꽃이 피어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의 시조가 보여주는 상상력의 변증법 혹은 변증법적 상상이고, 이런 상상력이 보여주는 현대성이라면서 자연에서 현실을 읽고, 현실에서 고통을 읽고, 마침내 고통에서 그의 이상, 이상으로서 자연을 읽는다고 밝히고 있다. 이우걸 시인은 자연을 문명과 결합시키는 작업을 통해 시대 상황의 육화와 변용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서정시의 본질을 추구하는 일에도 남다른 성취를 보이고 있다.
유재영 시인은 서정시의 본질 구현에 힘써온 시인이다. 정갈하고 투명하며 쟁쟁 울리는 시편들이 그의 작품 세계의 주조를 이룬다. 시대 상황을 육화하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또한 무너지고 있는 어둠의 세력에 대한 증오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형상화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이렇게 그의 시조 세계는 폭넓다. 「광장의 사나이」, 「누이여, 아우여」, 「배면」, 「물총새에 관한 기억」 등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그것을 온몸으로 체화할 수 있다. 「쓸쓸한 화답」은 마흔 살 안팎의 나이인 중년이 겪고 있는 계절 정서를 담담하고 정갈하게 그리고 있다. 피 끓는 젊음을 다 보내고 이제 웬만큼 내공이 쌓인 불혹의 나이 앞에 “툭! 하고 떨어지는//신갈나무 열매 한 개”를 주워서 살피다가 불현듯 “화두란 바로 이런 것 쓸쓸한 화답 같은”이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이렇듯 「쓸쓸한 화답」은 결코 쓸쓸하지만 않는 삶의 설렘과 허전함이 간결한 두 수로 잔잔하게 직조되고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시의 맛이 깊게 스미어들어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시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닫게 하는 시편이다.
이 네 시인의 시조 세계 미학적 성과는 그동안 적지 않은 연구자들에 의해 격에 걸맞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므로 독자들과 후학들은 온고지신의 자세로 이 시집을 탐독하면서 눈부신 적공에 대해 깊이 있는 조망의 시간을 가져볼 만하다. 시조에 갓 입문한 이들이나 시조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이 시집을 통해, 네 시인의 시조 세계와 문학적 여정을 눈여겨 좇으면서, 자신의 창작 방향의 시금석으로 삼거나 시조를 온몸으로 충분히 음미하기에 좋을 귀한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