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유 문학 양식인 하이쿠는, 그 독특한 형식과 매력으로 인하여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수많은 애호가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학교에서도 전혀 언급되지 않고 출판계에서도 외면하고 있어, 몇 권 안 되는 번역 작품들만이 소개되고 있다.
하이쿠는 제목 없이 17음절만으로 구성되고 계절을 상징하는 어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연이나 사물들이 등장해야 하므로 시제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제목을 생략하기 때문에 시를 지을 때의 맥락이 제공되지 않으면 이미지 파악이 쉽지 않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저자는 하이쿠의 가장 대표적 특징인 5·7·5 음수율만을 엄격히 적용하고, 모든 작품에 제목을 정하였으며, 계어는 대부분 작품에서 무시하였다. 또한 일본어는 한자 발음 때문에 음절은 17음절일지라도 글자 수는 17자가 안 되는 경우가 흔하기에 끊는 말(切れ子) 규칙이 필요하지만, 우리말은 띄어쓰기만 하면 되기에 이 또한 무시되었다.
한 줄도 안 되는 응축된 문장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극한의 압축과 절제가 필요한 점이 선불교 정서에 부합하고, 초기에 주로 승려들이 주도적으로 작품을 썼기에, 전통적으로 작품에 선기(禪機)와 담백한 맛이 배어 있어, 하이쿠는 선(禪)시와 같은 장르로 여겨진다. 그런데 저자는 계어의 장벽을 허물어 버림으로써, 정통 하이쿠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수많은 세상 속 이미지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평생 제대로 된 시를 써 본 적도 없고 문학에는 완전한 문외한인 저자가 단지 하이쿠의 매력에 끌려, 하이쿠 작법 규칙을 무시하고 제목까지 붙인 변형된 하이쿠 시집 개정증보판을, 세상 눈치도 보지 않고 탈고하였다. 이 돈키호테 같은 시도에 대해서, 독자들이 직접 작품을 읽고 평가 해보기를 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