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기고 싶은 내 비밀은 ‘가난’
이 고통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렉스는 집보다 학교가 좋다. 학교에서는 두 살 동생을 돌보지 않아도 되고, 설거지나 청소도 하지 않고, 엄마의 기분을 살피지 않고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6학년이 된 첫날부터, 학교마저 더 이상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없었다. 무료 급식 프로그램에 이름이 등록되었기 때문이다. 렉스는 점심시간마다 계산원에게 ‘무료 급식’ 대상자라고 말하는 걸 누가 듣게 될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가난하다는 걸 동네방네 알려야 하는 꼴이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게다가 5학년 때 친했던 친구들은 모두 풋볼 팀이라서 점심시간에도 붙어 앉았다. 렉스도 그 틈에 정말 끼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는 렉스가 풋볼을 하면 동생은 누가 돌볼 것이며, 행여 다치면 병원비는 누가 낼 거냐고 하면서 결사반대했다. 얼토당토않은 논리에 포기하지 않고 엄마를 졸랐지만, 다음 날 렉스의 눈은 멍이 들어 있었다. 새아빠와 엄마의 폭력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영어 선생님도 렉스를 경계하고 차별한다. 렉스는 자신이 백인이 아닌 데다가 허름한 옷차림이라서 그렇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은 ‘가난’ 때문이라고 믿는다. ‘돈’만 있으면 이 모든 것이 바뀔 거라고.
작가의 슬프도록 아픈 성장기
가난과 폭력에 맞선 열세 살의 안간힘
렉스는 폭군과도 같은 새아빠와 정서적으로 불안한 엄마 사이에서 열세 살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아이가 아이답지 못하다는 것만큼 안타까운 게 또 있을까? 렉스는 감당 못할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았다가 순간순간 거친 말로, 큰 소리로 표출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바로 후회하고 자신을 질책한다. 자신 또한 나쁜 사람은 아닐까 의심하고 괴물이 될까 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다행히 렉스 곁에는 사랑과 우정으로 보듬는 이들이 있다. 가난하게 살았지만 꿈을 이룬 외할머니는 렉스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어른이다. 렉스의 인내심은 딸의 갖은 홀대에도 불구하고 딸을 꿋꿋하게 사랑하는 외할머니를 닮았다. 렉스와 점심시간 밥 친구가 된 이단은 모든 가족이 복잡한 상황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부유한 환경에서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사는 이단도 나름의 결핍이 있고 고민이 있다는 발견이 렉스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
이러한 외할머니의 안정감과 친구 이단과의 우정은 렉스가 엄마를 향한 사랑을 잃지 않는 데 큰 힘이 된다. 결국 엄마는 렉스의 사랑으로 회복되고, 엄마의 회복은 온 가족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빈곤이 만들어 낸 불편한 현실
하지만 ‘희망’마저 빼앗아 갈 수는 없다
《불편한 점심시간》은 읽기 불편하다.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할 수 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벌어져서는 안 되는 아동 학대가 곳곳에 묘사돼 있기 때문이다. 허구가 아닌 작가 본인이 겪은 이야기라고 하니, 그 폭력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학대에 노출된 아이들이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열세 살 렉스처럼 숨기고 있어서, 우리의 관심이 없어서 보이지 않을 뿐.
작가가 떠올리기조차 싫었다는 기억을 애써 지면에 옮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렉스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 또한 여전히 많기 때문. 작가는 이 책으로 그 아이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리고 경제적인 빈곤, 그로 인한 아동 학대, 가정 폭력, 사회의 편견과 차별 등의 공격 속에서 외롭게 버티고 있는 아이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