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우리는 사회적 존재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살아간다. 일상생활에서 서로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이나 글, 문자, 상징 등으로 표현하며 공동의 정보(common ground)를 구축한다. 자기 주도적으로 상황을 인지·판단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주체자로 살아가야 하는 AI시대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상호 주관적으로 의미를 표현하며 위계적·비위계적 개념들 간 연결을 강화하고 있다.
의미론은 표현과 대상물 간의 관련성을 밝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심리학자나 언어 철학자의 관점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이론이나 민족지학적 접근 등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표현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화자, 청자, 사회·문화적 맥락 등에 의해 역동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화자는 대화 참가자들에 대한 정보, 언어적 지식, 세계에 대한 지식 등을 바탕으로, 자신이 의도하는 정보를 형성하고 사회·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여 발화한다. 청자는 심리적, 철학적, 언어적 요인, 사회·문화적 이론이나 민족지학적 접근 등을 모두 고려하여 화자의 의도를 해석한다. 이런 측면에서, 대화 참여자들 간 상호작용 시, 청자는 화자가 발화한 표현과 대상물 간 관계를 포괄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포괄적 관련성(inclusive relationship)을 형성화(formulation), 맥락화(contextualization), 추상화(abstraction), 일반화(generalization)로 나누어 연구하는 것이 상호작용 의미·화용론이다.
화자는 자신의 의도를 개인 내적 층위에서 형성화한 후, 대인 간 층위에서 형성화된 단어, 구, 문장 등을 맥락화하여 발화한다. 대화 참여자들 간 일련의 상호작용의 과정 속에서 공유하는 지식(sharing knowledge)이 많아지면서 서로 간 의미를 구축하고 확장해 나간다. 그래서, 대화 참여자들이 표현한 단어, 구, 문장의 의미는 주관성(subjectivity), 상호 주관성(inter-subjectivity), 상호이해(mutual comprehension) 등이 고려되어야 하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 규준, 신념 등을 바탕으로 발화한다는 측면에서 사회이론과 민족지학적 방법론의 렌즈를 통해 제대로 분석될 수 있다.
이 책은 3개의 부와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1부 ‘상호작용 의미·화용론 개관’은 1장 ‘상호작용 의미·화용론: 개념’, 2장 ‘사회이론과 민족지학적 이론 ’, 3장 ‘상호작용 의미·화용론: 구성과 가정’, 4장 ‘상호작용 의미·화용론: 층위별 형성화·맥락화’로 구성된다.
상호작용 의미·화용론의 개념 및 프레임워크를 제시한 1장에 이어, 2장에서는 대화 참여자들이 구축하는 맥락화의 요인들을 살펴보고, 그들을 활용하여 표현하는 과정을 탐구하였다. 맥락은 대화 참여자들 간 의도하는 것을 수월하게 이해하며, 표현과 지시하는 대상이나 사물들 간 관련성을 어려움 없이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대화 참여자는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기 이전에 개인 내적 층위 단계에서 사건구조, 통사구조, 음운구조를 계획한 후, 대인 간 층위 단계에서 INTERACTION의 자질들을 선택하여 맥락화하고 발화한다. 물론, 화자는 개인 내적 층위 단계에서 언어맥락을 고려하여 메시지를 구성하며, 대인 간 층위 단계에서 상황 맥락과 사회·문화 맥락을 고려하여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대화 참여자들은 내적 층위에서 계획한 의도를 상황 맥락과 사회·문화 맥락에 적합하게 화행, 순서교대하기, 대화수정, 범위 등을 선택하여 맥락화한다. 대화 참여자들은 상호 주관성을 갖고 서로 전달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의도를 발화하며, 그로 인해 공동의 정보(common ground)를 서로 구축하면서 상호작용한다.
3장에서는 대화 참여자들 간 상호작용에 적합한 담화구조의 틀과 의미협상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화자는 의사소통의 목적에 적합한 담화구조를 선택해야 하며, 의사소통이 자연스럽지 못하거나 단절이 일어나는 경우, 의미협상을 통해 상호작용이 효과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화자는 영역(field), 테너(tenor), 모드(mode)를 충분하게 고려하여 발화해야 한다. 화자는 말하고 있는 화제에 적합한 문장을 구성하고 어휘를 선정해야 하며, 전달할 내용을 듣거나 읽는 사람을 고려하여 언어를 격식 있게(formal) 사용할 것인지, 격식 없이(informal)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며, 상대방에게 자신이 의도하는 것을 이메일로 할 것인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할 것인지, 방송에 출연하여 말할 것인지 등을 결정한다. 이런 측면에서, 화자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에 적합한 사건구조, 통사구조, 음운구조를 형성화하고, INTERACTION자질들을 바탕으로 화행 및 의미협상의 과정에 적합한 담화구조를 구축하여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2부 ‘단일문장의 의미·화용’은 4장 ‘사건 간 시간해석’, 5장 ‘보문절의 의미해석’, 6장 ‘등위접속 요소들 간 의미해석’으로 구성된다.
4장에서는 화자가 개인 내적 층위에서 언어적 지식, 언어맥락 등을 고려하여 언어를 거시·미시계획하고, 대인 간 층위에서는 주어진 일차적 시간(given primary time: GPT), 주어진 일차적 공간(given primary space: GPS) 등의 상황 맥락, 세상에 대한 지식 등의 사회·문화맥락을 바탕으로 맥락화하여 표현하는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사건진전체계를 구축하였다. 또한, 그 체계를 통해 텍스트에 나타나는 사건 간의 시간 관련성을 해석하며, 완료상과 진행상이 갖는 의미를 분석하였다. 더욱이, 어휘상의 자질들과 진행상 간의 자질점검을 통하여 진행상의 문법성과 미완료 모순을 분석하였다. 즉, 종결성 자질인 [telic], 역동성 자질인 [dyn], 순간성의 자질인 [inst] 등을 사용하여 진행상의 문법성을 설명하였다.
5장에서는 화자가 개인 내적 층위에서 모문절과 보문절 간의 시간해석이 회상해석이나 동시해석이 될 수 있도록 보문소와 시제 간의 관련성을 고려하여 통사구조를 형성화한 후 발화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화자는 개인 내적 층위에서 모문과 보문 간의 시간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보문소의 역할, 모문과 보문의 발화시(speech time: S)나 사건시(event time: E) 등의 관계를 제대로 연관시켜 계획하고 발화한다. 이에, 화자는 보문소와 시제가 보문절의 의미해석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보문소의 종류와 통사적 위치를 결정한다. 이런 점을 바탕으로, 동사의 특성이 시제일치규칙에서 예외로 처리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으며, 부사, 시제, 문맥 등에 의해 보문절의 다양한 해석들을 분명하게 해석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6장에서는 대화 참여자들이 서로 등위접속 요소들 간 시간해석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등위접속의 의미구조를 형성화(formulation)한 후 맥락을 구축하고 발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어휘상, 인과성, 문맥정보 등의 요인들이 등위접속 요소들 간 다양한 시간관계(선후관계, 동시관계, 포함관계, 설명관계, 대조관계 등)를 해석하는데 미치는 요인들이라는 것을 살펴보고, 그 요인들 간의 우선 적용 순위를 검증하였다. 다시 말해서, 등위접속 요소들 간의 시간관계를 순서성 수칙, 어휘상, 인과성, 문맥정보, 세상 지식 등으로 적절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그 요인들 간의 우선 적용순위를 정한다면 문맥정보나 세상 지식이 순서성 수칙이나 어휘상보다 우선 적용될 수 있는 요인이라는 것을 논의하였다. 또한, 그 요인들을 바탕으로 담화에 나타난 등위접속 요소들 간의 다양한 시간해석의 양상들을 상호작용 의미·화용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3부 ‘문장들 간 의미·화용’은 7장 ‘사건진전체계와 장르별 텍스트 분석’, 8장 ‘거시 텍스트 구조: 사건 간 의미해석과 전경’, 9장 ‘연설문에 나타난 헤지 분석’으로 구성된다.
7장에서는 거시 텍스트 구조에서의 사건 간 시간관계를 해석하는 데 관련되어 있는 요소들과 사건진전 양상에 대해 살펴본 후, 장르별 텍스트 분석의 결과를 바탕으로 사건 간 시간관계를 결정하는 요인들이 무엇이며, 장르별로 나타나는 사건진전층위의 양상이 어떠한지 비교하였다. 화자(작가)와 청자(독자) 간 상호작용 시, 화자(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개념-사건구조, 통사구조, 음운구조 형성화한 후, 상황 맥락과 사회·문화 맥락의 자질들을 바탕으로 그 의도를 맥락화하여 청자(독자)에게 표현한다. 이런 측면에서, 독자는 작가가 표현한 사건들 간 시간 관련성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 상황 맥락과 사회·문화 맥락의 자질들로 작가가 표현한 의도를 파악하려고 한다. 사건진전 양상과 사건진전층위를 기반으로 설정한 분석의 틀로 사건 간 진전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설화 텍스트 The Pearl, 에세이 The Nature of Symbolic Language, 신문기사 Princess Diana, 연설문 Inaugural Address 등을 분석하여, 그 틀의 타당성을 입증하였다.
8장에서는 거시 텍스트 구조의 갈등과 절정 부분이 다른 부분에 비해 사건 진전이 많이 일어나서 전경정보의 빈도수가 높게 나타나는 반면에, 발단과 결론에서는 비교적 낮게 나타난다는 가설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사건 간의 진전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Fitzgerald의 The Great Gatsby(GG), Mark Twain의 The Adventures of Tom Sawyer(ATS), Defoe의 Robinson Crusoe(RC), Hemingway의 The Old Man and the Sea(OMS), Steinback의 The Pearl(P)을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첫째 갈등과 절정 부분에 사건진전이 발단과 결론에 비해 비교적 많이 나타난다는 가설의 타당함이 입증되었고 둘째, GG, ATS, RC, OMS, P 모두 공통적으로 사건 간 진전이 절정에서 가장 빈도수가 많았고, 그 다음으로 갈등, 도입, 결말 순으로 나타났으며 셋째, 어휘상 중 성취 동사와 완수 동사가 사건 간 진전을 결정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9장에서는 연설문의 분석을 통해 추출한 어휘적, 통사적 헤지 표현들의 자료를 바탕으로 헤지에 대한 개념을 다시 정립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연설문에 나타난 어휘적, 통사적 헤지 표현의 양상과 의미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헤지는 대화 참여자들 간 상호작용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화자는 연설문에서 좋지 않은 표현들의 부정적 의미를 부드럽게 하거나 발화를 객관적이고 모호하게 하기 위해 헤지를 표현한다. 또한, 화자는 판단을 유보하기 위해 헤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화자는 공손성 원리뿐만 아니라 의사소통의 전략적 측면도 고려하여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화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단어, 구, 문장과 대상물 간 관련성을 상대방이 포괄적으로 탐구해야 할 이유다.
화자는 내적층위에서 상대방에게 표현할 의미·개념을 사건구조로 구조화한다. 대인 간 층위에서 형성화한 언어(단어, 구, 문장 등)를 상황 맥락과 사회·문화 맥락을 고려하여 맥락화(contextualization)하고 대화 참여자들과 의미협상(negotiation of meaning)한다. 이러한 형성화와 맥락화를 모두 고려하여 표현과 대상물 간 관련성을 분석하는 상호작용 의미·화용론은 대화 참여자들이 논리형태뿐만 아니라 맥락 자질을 선정·수정·확장하면서 다양하고 역동적인 형태로 표현하는 것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상호작용 의미·화용론은 언어학과 사회·문화·민족지학을 바탕으로 하는 거시맥락, 미시맥락과 상호작용하면서 의미가 구축되고 있음을 살펴보고, 대인 간 상호작용에서 상황에 적합하고 효과적으로 교섭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따라서, 대화 참여자가 표현한 단어, 구, 문장과 대상물 간 포괄적 관련성을 밝히는 데 초점을 둔 상호작용 의미·화용론이 탐구되어야 할 시점이다.
이 책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한국문화사 김진수 사장님, 조정흠 부장님, 진나경 대리님께 감사의 뜻을 표한다. 여러 가지 부족한 책이지만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큰 기쁨이다.
2024년 12월
저자 김진석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