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난 70여 년 동안 전쟁의 폐허 속에서 기적적인 성장을 이루며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했다. GDP 1조 8천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3만 4천 달러,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그리고 무역 순위 8위라는 기록들은 현재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수치들이다. 국방력 세계 6위, 고등교육 이수율 69%로 세계 최고, 영유아 사망률 0.24%로 세계 3위라는 성과도 대한민국이 이뤄낸 눈부신 발전의 일부에 불과하다. 한국은 불과 70년 전만 해도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국가 예산의 70% 이상이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원조로 충당되었다.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이 나라가 복구되려면 최소 100년은 걸릴 것이다.”라고 평가했지만,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내며 세계의 예상을 뒤엎었다. 이제는 공적개발원조(ODA)를 받던 나라에서 제공하는 나라로 전환하며 국제사회의 모범적인 성장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과거의 영광에만 의존할 수 없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경제적 성취 뒤에 감춰진 내부적 갈등과 사회적 균열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우리 사회의 갈등 수준이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빈곤층과 중산층’ 간의 갈등, ‘보수와 진보’ 간의 대립은 응답자의 80%가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다. 세대 간, 젠더 간 갈등도 갈수록 격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갈등들은 국가의 통합을 저해하고 미래 발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지 사회 내부의 갈등으로 끝나지 않는다. 각자의 입장에서 유리한 정보를 소비하며 편협한 시각에 갇히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이는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왜곡된 정보의 확산을 초래한다. 결국, 갈등은 대화의 단절을 낳고, 대화가 단절되면 사회의 발전과 통합을 위한 토의와 토론은 실종된다. 정치와 역사는 그러한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는 영역이다. 많은 논의가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 못하고, 각기 다른 전제에서 출발하여 논의의 본질을 벗어나 혼란스러워지기 일쑤다. 토론의 출발점이 되는 전제조차 합의되지 못하면, 서로 다른 가정하에서 제시된 주장이 충돌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로 인해 논리적 일관성이 깨지고, 각자의 의견은 설득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는 진정한 소통이나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극단적 대립과 격화되는 갈등이 반복되는 것을 지켜보며 피로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각자 다른 전제와 신념 속에 갇혀 있는 논의가 아니라, 모두가 공감하고 합의할 수 있는 공통된 전제를 바탕으로 한 건설적인 논의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내부적으로는 세대, 성별, 계층 간의 갈등이 날로 심화되고 있으며, 외부적으로는 지정학적 긴장과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단순한 경제적 성장을 넘어서, 정치적 성숙과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서로 다른 관점과 입장을 조율하고, 하나의 합의된 한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합의된 한국’은 단순한 사회적 합의를 넘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국가적 비전과 방향성을 정립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논의를 위해 고려해야 할 논리와 역사 그리고 진실을 다루고 있다.
먼저, 1장에서는 정치체제와 경제모델 간의 상관관계를 탐구하며, 정치적 변동이 어떻게 경제 발전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장단점을 고찰하고, 민주주의가 단순히 정치적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논증한다. 또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알아본다.
2장에서는 자유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개념을 중심으로, 각 자유가 어떻게 정치적 이념과 연결되는지를 설명한다. 자유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개인의 권리에 대한 논의에 그치지 않는다. 소극적 자유의 존중이 없을 때, 적극적 자유는 쉽게 전체주의적 성향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경고한다.
3장에서는 경제 발전의 역사를 심도 깊게 다룬다. 상업 자본주의의 태동에서부터 산업 자본주의,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설명한다. 또한 대공황 극복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미국의 뉴딜 정책과 독일의 경제 재건을 비교한다. 시장의 실패로 불린 역사적 사건이 과연 진정한 시장의 실패였는지를 검토한다.
4장에서는 대안적 경제모델로서 유럽의 사회 민주주의를 고찰한다. 유럽의 사회 민주주의는 경제적 평등과 복지를 추구하면서도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틀을 유지하고자 했다. 특히 북유럽 국가들은 높은 세율을 통해 이상적인 복지국가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세금 정책을 조정하고 기업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며 경제성장을 도모했다. 이처럼 사회 민주주의의 오해와 진실을 탐구하며 사회 민주주의가 한국의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논증한다.
5장에서는 기업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설명한다.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 간의 관계가 자본주의의 연속성의 토대가 됨을 이해하고 기업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했던 슘페터의 논리를 분석하여 자본주의가 어떤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 체제에 필요한 요소들을 탐구한다.
6장에서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한반도의 대내외 정세를 분석한다. 대한민국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하게 되었는지, 해방 정국의 주요 지도자들과 그들이 주도한 정치적·경제적 흐름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더불어, 당시 국내외 정세가 이 과정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며, 각 정치 세력 간의 이념적 갈등이 체제 선택에 미친 결정적 요인들을 함께 살펴본다.
7장에서는 건국 초기 대한민국이 직면한 도전과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4.3 사건과 여순사건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이 내부적 혼란을 어떻게 극복하며 국가의 안정을 찾아갔는지 분석한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 역사에서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는 친일파 청산 문제를 당시 시대적 환경과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고찰하고, 이를 둘러싼 복잡한 이슈들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이러한 과정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 확립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며, 역사적 사건을 재평가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8장은 대한민국의 특수성을 탐구한다. 국공내전과 베트남전쟁과는 달리, 한국이 공산화를 막을 수 있었던 배경과 그 이유를 분석하고, 이러한 국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들을 다각도로 고찰한다.
9장에서는 대한민국의 주류 역사관을 탐구한다. 민족사관, 민주사관, 민중사관 각각의 특성과 이념적 배경을 분석하고, 각 역사관이 지닌 맹점과 한계를 짚어본다. 또한 이러한 역사관들이 한국 사회와 정치적 담론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며, 균형 잡힌 역사적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이 직면한 주요 논제에 대해 사회적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공통의 전제를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와 전제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본서는 오해를 바로잡고 합의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합의된 한국’은 단순히 이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미래의 비전이다.
갈등을 넘어 합의로, 분열을 넘어 통합으로. 이 책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며, 우리 사회에 건강한 토론과 건설적인 논의가 활성화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함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