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행 작가의 수필집 『어쩌면 아름다운 마디』는 각각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 50편의 짧은 글마다 완결성과 아울러 주제에 관한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정수남(소설가)
이 책은
조수행 작가의 수필집으로 5부로 구성되었는데 작 부마다 특징적 삶의 편린들을 정확하고도 명징한 문체와 특유의 서정성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1부는 온고지신의 작가 고백이 빛을 발하고 있다. 표제로 뽑은 글 ‘그 마디를 거쳐서야 한 편의 글이 완성되는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 것처럼, 작가가 살아온 인생의 마디를 찬찬하게 살피고 있다. 오래된 책상, 오래된 도마, 반백 년 동안 신발에 갇혀 지낸 발 등을 통해 버리지 못하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미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80살로 태어난 버튼이 0살에 죽는다는 것을 통해 문학을 향한 작가의 확고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우리에게 과거가 없다면 현재는 물론 미래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과거에 대한 미련과 사랑과 애착을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2부는 가족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돋보이는 글이다. 사람은 누구나 가족 속에서 살아가게 마련이다. 가족 속에서 사랑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성장시키는 게 사람이다. 「엄마의 방」, 「아버지의 등」, 「가시도 아프다」를 읽다 보면 작가의 가족 사랑이 얼마만큼 애틋한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또 「폭설」과 「작은딸의 작은 방」에서는 두 딸을 향한 어미의 자식 사랑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엄마의 향기」는 어릴 때 일기를 쓰는 엄마를 보면서 향기를 느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자신은 딸들에게 과연 어떤 향기를 지닌 엄마로 기억될까, 돌아본다. 작가는 그런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덧대어 동물, 식물들까지도 가족으로 품는다. 「그린 핑거」를 통해 자신의 가족이 사람뿐만 아니라 조류와 식물, 물고기들까지 포함된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한두 마리, 한두 그루에 그치는 게 아니다. 앵무새와 문조와 십자매. 거기에 수십 그루의 관엽식물과 관목식물, 동양란과 서양란, 그리고 또 다육이까지 안고 산다. 그뿐만이 아니다. 거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수족관에서 알을 낳고 부화하며 노니는 열대어 수십 마리까지 가족이라고 밝힌다. 이것은 작가의 가족 개념이 너와 나라는 단수가 아니라 여럿이 하나라는 복수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은 가족끼리 사랑을 교감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동·식물에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주면서도 받는 것을 모르기 일쑤인데 작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날마다 자신이 주는 사랑 이상으로 사랑받는다고 믿으며 그것을 상호 교감한다. 그래서 그는 이미 죽은 가족까지도 그 기억에서 지우지 못한다.
3부에는 가족과 이웃의 애틋한 사연이 녹아 흐른다. 작가는 자신과 인연이 닿는 동·식물 가족 모두에게 일일이 이름을 붙여주고 있다. 앵무새 넷과 십자매와 문조 몇 마리, 또 수족관의 열대어에도 마찬가지이다. 「약속」에서 무정란을 부화시키기 위해 안고 애쓰던 ‘설이’라는 백문조가 죽자 땅을 파서 무덤을 만들어주었다는 문장에 이르면 그의 가족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4부에서는 작가가 직접 여행을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 끊임없이 걸음을 옮기는 작가는 일반적인 여행 기록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심경을 자신의 색깔로 진솔하게 토로한다. 여행을 하면서 때로 옛고향 집을 떠올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데, 거기에 같이 살았던 부모님과 형제, 이웃들이 그의 눈과 손을 거쳐 다시 작품 속에서 살아난다. 그런가 하면 캄보디아에서 겪은 체험을 작품화한 「원 달러를 외치는 아이들」과 「그녀와 새만금」에서는 친환경과 아울러 진정한 행복이란 게 무엇인가를 사색하며 돌아보기도 한다. 특히 작가가 즐겨 찾는 곳은 산이다. 꼭 유명한 산만 찾는 것은 아니고, 야트막한 동네 산도 마다하지 않는다. 산에 올라 지금까지 고정화된 낡은 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사색과 명상을 즐기면서, 그 사유와 단상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5부는 인생에서 행복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배움을 일컬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여긴다. 장맛비에도 변함없이 의연한 연꽃을 보면서, 또 주말농장에서 채소를 기르면서, 구제역을 통해서도, 일본의 지진을 보면서도, 때로는 미물에 불과한 애벌레에게서도 배운다. 연, 애벌레, 공기인형, 달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시선이 닿지 않는 데가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산사에서 전시된 미술작품을 감상하면서도 배운다. 그렇게 작가에게 모든 사물은 관찰의 대상이 되고, 배움의 존재가 된다. 그러면서 작가는 실천을 통해 스스로 배움을 터득하기도 한다. 구제역 사태 이후 몇 개월간 채식주의를 고수한 작가는 그러나 몇 달 후 그 결행을 마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빔밥, 자장면 등에 부재료로 들어 있는 고기 맛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스스로 자신이 애매한 육식 반대론자였으며, 어정쩡한 동물 학대 금지론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성찰하며 고백하기에 이른다. 이성과 감성의 힘.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것 역시 배움의 길을 가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조수행 작가의 수필집 『어쩌면 아름다운 마디』는 각각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 50편의 짧은 글마다 완결성과 아울러 일관성이 있고, 적절한 경제성까지 지니고 있다. 수필의 기본은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해석에서 출발한다. 여기의 세계란 사물뿐만 아니라 우주 만물과 사람, 사건까지 포함한 개념을 뜻한다. 조수행 작가는 이 수필집을 통해 그것을 훌륭하게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