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거나, 아프거나, 술 취했거나, 미치지 않으면 나를 만날 수 없다."
"이년아, 저년아"에서 유래한 사회복지 공무원의 호(號) 연아
생생한 묘사로 전해지는
사회복지 공무원 "연아"의 노동 이야기
"연아"가 만난 사람들, "연아"가 포착한 마음과 목소리들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단원 김홍도, 연아 신아현!
사회복지 공무원의 호는 "연아"라는 말이 있다.
민원인이 만만한 여자 사회복지 공무원을 부를 때 가장 많이 쓰는 호칭인 "이년아, 저년아"에서 유래한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다.
《나의 두 번째 이름은 연아입니다》는 25년째 사회복지 일을 하고 있는 "연아"가 기록한 노동 일지이자 삶을 돌아보는 일기이자 세상을 향한 외침이다. 그동안 저자가 겪은 민원인들과 실천한 복지사례, 그리고 사회복지 공무원으로서 살면서 생각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가난하거나, 아프거나, 술 취했거나, 미치지 않으면 나를 만날 수 없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동주민센터에서 저자가 만나는 이들은 대부분 삶이 괴롭고 피곤한 사람들이다. 공무원의 말을 듣기는커녕 무작정 고함부터 지르고 떼를 쓰고 심지어 협박까지 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고독함이 존재한다. 늘 주민센터 문을 박차고 들어와 웃옷을 벗고 위협하던 민원인이 그동안 미안했다며 흐느끼고, 왜 집에 찾아오냐며 역정을 내던 할머니가 어느 순간부터 저자를 위해 요구르트를 사 놓고 기다리기도 하는 사연들을 보면 그들이 품고 산 고독함이 읽혀 마음 한켠이 뻐근해진다.
물론 영화처럼 애틋한 사연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끝끝내 세상과, 그리고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공무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악성 민원인, 이제는 너무나 큰 사회 문제가 되어 버린 고독사, 이어진 연이 없어 공영장례를 치러야 하는 무연고 사망자 등의 이야기들 또한 등장한다. 손길을 거부하거나 손이 닿지 않은 곳에서 스러져 가는 이들의 모습도 연아는 담담하게 기록해 냈다.
이 책은 기초생활수급자나 민원인이 사회복지 공무원의 도움을 통해 인권의 존엄을 지키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복지가 실현되는 아름다운 광경만을 얘기하진 않는다. 최소한의 보호 시스템 안에서 민원인을 응대해야 하는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늘 고성과 위협에 시달리지만, 그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나 위험에 대비한 안전은 아무도 보장해 주지 않았다. 심지어 저자는 "사회복지하는 년 나와!"라고 소리치며 달려든 민원인에게 맥주병으로 머리를 맞을 뻔했던 사고까지 겪었지만, 그것에 대한 조치는 사후 약방문이나 다름없었다. 조금 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는 없는 걸까?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품은 고민 중 한 가지는 "내가 겪은 폭언과 폭행을, 사회복지 공무원이라면 무조건 참고 견뎌야 하는 것으로 오인할까 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민원인의 폭력을 군말 없이 인내하는 일도 사회복지업 종사자의 업무에 포함되는 걸까? "월급을 받으면서 남을 도와줄 수도 있는 일"에 자부심과 열정을 느끼고 임하는 이들이기에 이런 근무 환경까지 감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봉사 의식으로 복지를 직접 제공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사각지대에 몰려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그들의 희생과 불안감을 당연한 부분으로 여기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술 먹지 않고, 화내지 않고 말해도 우리는 충분히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아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_본문에서
단 한 번이라도
배가 고파 울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이 고팠던 사람이라면
목 놓아 울 것이다.
여기, 우리의 영혼 곁을 파고드는 사랑이 있다.
저자가 집필 중 마주한 또 다른 고민은, 타인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사라지고 핵개인화가 가속화되는 사회에서 이 책이 그저 "남의 삶을 이야깃거리로 만드는 것이 아닌지, 궁금하지 않은 타인의 삶에 억지 관심을 요구하는 건 아닌지"였다.
하지만 어떤 이들의 삶은 종종 외면당하기 때문에 오히려 조명되어야 한다. 그늘에 있기 때문에 양지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 우리가 고개를 돌린다고 해도 존재가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끌어올려져 어떤 형태로든 회자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기에 연아는 오늘도 세상의 낮은 곳으로 한 걸음 더 내디디는 것이다.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눠 질 수 없다면 눈물과 웃음, 온기라도 나누기 위해서.
《나의 두 번째 이름은 연아입니다》는 소외계층과 사회복지 종사자라는 특정 계층이나 직업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의로, 타의로 고립되어 가는 개개인이 이루는 현대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태도가 무엇인지, 어떤 것이 진정한 중요한 가치인지 생각하게 만들고 삶을 나누는 책이다. "각자도생"이 어느새 사회 풍조로 당연하게 자리 잡은 요즘, 이 책을 통해 곁에 있는 서로를, 그리고 더 그늘진 곳에 존재하는 우리네 이웃들을 잠시 들여다볼 수 있길 희망해 본다.
"살아가다 보면 나와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나와, 혹은 내가 아는 사람들과 언제든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늙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한 번도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평생 가슴 아픈 슬픔을 만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 그런 삶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 희망,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과 함께 우울, 슬픔, 외로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거부하지 않고 바라봐야 긴 인생을 잘 살아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이야기는 전해져야 했다."_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