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까지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킨 선비”
정찬주 작가의 《사람의 길》은 ‘임진왜란 명장수 시리즈’의 5번째 역사소설이다. 충무공 이순신이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할 만큼 호남의 민초들과 의병들의 충절은 벼랑 끝에 선 국운을 일으켜 세우는 근원적 힘이었다.
보성 출신 의병장 안방준의 생애를 복원한 이 소설은 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에 이르기까지 그의 행적을 입체적으로 다루면서 당시 역사를 되짚고 있다.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의병군이 있었다
선조25년(1592), 왜군이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함락하고 빠른 속도로 북진하자 안방준은 노스승 박광전을 따라 전라좌의병 임계영 의병장 산하의 종사관으로 전쟁에 뛰어든다. 상주전투에서 이일 순변사가 패하고 충주의 신립 장수마저 무너지고 말았다. 왜군이 기세를 몰아 한양으로 북진하자 4월 30일 선조는 궁궐을 버리고 파천을 단행했다.
다행히 이순신 좌수사는 5월 7일 옥포해전에서 왜선 26척을 격침함으로써 남해의 제해권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조선군은 육지에서의 전투에서 연신 패전하자 선조는 급기야 대동강을 건너 의주를 향했다.
나주 출신 김천일 의병장은 임금을 호위하겠다는 목적으로 조선 최초의 근왕의병을 일으켜 한양으로 출병했다. 하지만 근왕의병은 용인 광교산전투에서 패배하고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8월 15일, 임계영의 전라좌의병은 최경회의 전라우의병과 합세하여 금산과 무주에 있는 왜적에게 타격을 가하여 영동으로 도주하게 만들었다. 전라좌우의병군의 첫 승리였다. 호남을 장악하려던 왜적들을 물리치고 반격의 교두보를 지키게 되는 값진 승리였던 것이다.
병자호란에 안방준 의병장으로 호남 선비들 규합
정묘호란이 발발한 지 9년 만인 인조14년(1636) 12월 8일, 10만이 넘는 군사를 앞세운 청군이 다시 침입했다. 12월 14일, 강화도로 몽진하려던 인조는 닷새 만에 한양까지 다다른 청군에 막혀 남한산성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12월 19일, 근왕병을 모집해 청군을 물리치라는 인조의 교서를 받아본 안방준은 눈물을 흘렸다.
64세의 노쇠한 처지가 된 그였으나 능주 매화정에 의병청을 꾸리고 호남의 선비와 유생, 농부와 노비들을 모집하는 동시에 군량미와 창칼 등을 마련해 출정을 서둘렀다. 보성과 화순, 나주, 장흥, 강진, 함평 등지에서 의병들이 모여들었다.
이듬해 정월, 안방준 의병군이 매화정에서 출병해 금구(김제)를 거쳐 여산에 막 도착했을 때 남한산성의 비보가 전해졌다. 1월 21일 강화도를 먼저 공격한 청군은 1월 22일 강화산성을 함락하고 세자빈과 봉림대군을 인질로 붙잡았다. 이 소식을 들은 인조는 1월 25일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예가 아닌 것은 말하지 말며 행동하지 말라!
왕자(광해군) 사부를 지낸 박광전 문하로 들어간 안방준은 첫 가르침으로 ‘사물잠(四勿箴)’을 받는다. 선비로서 수신과 처세에 흠이 없도록 경계해야 할 네 가지 잠언이다. 즉 “예가 아닌 것은 보지 말며, 예가 아닌 것은 듣지 말며, 예가 아닌 것은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닌 것은 행동하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라는 가르침이다.
이것이 바로 선비의 길이고 군자의 길이며 사람의 길인 것으로서 안방준의 인생을 관통하는 선비정신의 핵심이다.
정약용 못지않은 많은 역사 서책 저술, 편찬
그는 젊은날 임금이 내리는 관직을 모두 사양한 채 학문과 저술에 심혈을 기울였다. 불행하게도 그의 생애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등등 변란이 계속되어 붓을 놓았던 시기가 많았으나 역사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재평가하는 서책의 권수가 정약용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많다. 정해왜변 당시 녹도만호 이대원의 분투를 그린 《이대원전》, 제2차 진주성전투를 기록한 《진주서사》, 조헌의 상소문을 모은 《항의신편》, 절의를 위해 죽은 16인의 호남 선비를 다룬 《호남의록》, 동래부사 송상현 등 8명의 기록인 《임정충절사적》, 김덕령과 김응회, 김대인 의병장을 추모해 기린 《삼원기사》, 조헌의 《동환봉사》와 당쟁 자료를 모은 《혼정편록》, 기묘사화의 전말을 기록한 《기묘유적》, 조헌의 고결한 뜻을 문답 형식으로 지은 《사우감계록》 등등 많은 서책을 편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