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쾌한 문장과 섬세한 표현, 문체와 사상의 혁명
《열하일기》는 18세기 청나라의 문물과 제도를 통찰한 여행 기록으로 시대를 앞서간 조선 실학자의 혜안이 담겨 있다. 연암 박지원은 “천하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들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을 본받아야 한다.”는 실학사상을 가진 학자였다. 따라서 백성들에게 필요하다면, 당시 조선 사대부들에게 오랑캐라 일컬어지던 청나라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북학 사상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매사에 이용후생을 추구했던 연암은 집을 지을 때 벽돌을 쌓는 법, 온돌을 놓는 법, 수레의 바퀴, 해운시설, 상업적 환경 등 청나라의 실용적인 기술과 문명을 세세하게 관찰하여 조선에 전하고자 했다.
조선 정조 시대 문체반정의 표적이 되다
《열하일기》는 조선시대 일반 민중들이 쓰는 용어나 세속적인 표현, 비유와 우화적인 묘사, 소설을 삽입하는 등 새로운 스타일로 구성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사대부들의 반응도 극단적이어서 열렬한 지지를 보낸 반면, 전통적인 기풍과 풍속을 해친다 하여 질책을 받았다. 그러나 연암의 문체를 따라 하는 풍조가 유행하자 정조가 실시한 문체반정의 표적이 되었다. 정조는 당시 유행하던 소설체 문장을 패관문학이라 배척하고 전통적인 고문을 문장의 모범으로 삼도록 신하와 선비들에게 명하고 패관소설과 잡서의 수입을 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반계층과 실학자들 사이에 엄청난 양이 필사되어 세간에서 읽혔다.
통쾌한 즐거움을 주는 해학 넘치는 글쓰기
열하까지의 여행길에서 연암은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중국인의 생활과 모습을 대면하며 다양한 사건을 겪는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담이나 부끄러운 면모를 전혀 숨기지 않는 호쾌하고 대담한 선비의 자세를 견지하고, 풍자와 해학으로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보여준다.
청나라의 꽤나 번화한 마을에서 연암은 기세 좋게 필법을 자랑하고 싶어서 전당포에 걸어둘 휘호로 ‘欺霜賽雪(기상새설)’ 넉 자를 써주었다. 그러나 기실 ‘그 넉 자는 심지가 밝고 깨끗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가루가 서릿발처럼 가늘고 눈보다 흰, 그것으로 만든 국수를 자랑하는 뜻이었다.’(135~136쪽)
장신구 파는 집에 국수가게를 위한 글자를 써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중국인들의 기세에 눌리지 않기 위해 큰 잔에 중국의 작은 술잔 여러 개를 부어 단숨에 들이키며 허세를 부렸던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호랑이의 입을 빌어 이야기하는 〈호질〉에서의 해학적인 문체는 《열하일기》 특유의 재미를 더해준다. “대체로 제 것이 아닌 것을 취하는 게 도(盜)이고 남을 못살게 굴고 그 생명을 빼앗는 것을 적(賊)이라 한다. 너희들이 밤낮없이 쏘다니며 팔을 걷어붙이며 눈을 부릅뜨고, 함부로 착취하고 훔쳐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228쪽) 대목은 양반 계층의 탐욕과 부도덕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연암의 시대정신이 녹아들어 있어, 한바탕 신명나는 악극을 보는 듯 통쾌함을 자아낸다.
현대적인 문체로 생생한 재미를 되살린 《열하일기》
원전 《열하일기》는 본래 26권 10책으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이다. 이 책은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연암만의 독특한 문체와 실용주의적 사상이 집약되어 있는 내용을 선별했으며, 생생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현대적인 문체로 풀어 썼다. 사절단의 이동경로를 그린 지도를 수록해 한양에서 열하까지 연암의 여정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 부록으로는 연암의 일생과 사상, 정조가 문체반정을 시행한 시대적 배경 등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