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작과 끝에 가장 어울리는 말, 『고마워요』
『고마워요』에는 우리를 둘러싼 일상 속 사물부터 사시사철 변화하는 계절, 광대한 자연 풍경, 때로 위험을 느끼는 두려운 존재까지 온 세상을 향한 감사가 담겨 있다. 화자는 마치 말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반복하여 고마움을 말한다.
본문의 글은 오직 두 마디로만 구성되어 있다. “고마워요”, 뒤이어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대상이 나온다. 『고마워요』가 응시하고 고마움을 전하는 대상을 따라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집을 떠나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보물을 발견하는 모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인생이기도 하다. 오로지 두 마디로 구축한 서사이다.
『고마워요』가 감사로 헤아린 이 세계의 대상은 획일적이지 않다. 양말, 모자, 지도, 풍랑, 산호초, 수평선, 지저귐, 맹수들, 비밀, 동굴의 통로, 벽화, 2인용 자전거…….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선뜻 여기지 못한 것도 감사의 대상이다. 그래서 『고마워요』의 감사는 발견에 가깝다. 세계의 요모조모를 응시하다 발견한 도착점이 감사인 셈이다. 감사는 세상의 시작과 끝을 여닫고, 아름다움의 토대가 된다. 독자는 『고마워요』가 포착한 170여 개의 감사를 따라가다 비로소 나의 오늘을 응시한다. 오늘의 나와 연결되어 있는 지금 여기의 크고 작은 사물, 나무와 구름, 신발과 양말과 겉옷, 내가 선 시공간 같은 것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나와 지금 여기를 연결해 주는 이 모든 것들의 고마움에 대해, 마음을 환히 비추는 감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이다.
그곳에 있어 주어 고마워요!
확고한 감사가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의미
『고마워요』는 상징과 의미를 동시에 담았다. 페이지마다 독립된 개별 이미지는 사색의 장소이자 상징이다. 이 모든 이미지가 연속하여 쌓이면 의미가 되고 독자는 하나의 이야기로 『고마워요』를 바라보게 된다. 이미지와 단어, 색을 따라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를 경험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감사를 발견하는 사색은 낱장의 이미지에서 일어나지만, 책을 덮는 순간에는 하나의 이야기를 통과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고마워요』는 오직 그곳에 있기 때문에 감사한다. 『고마워요』의 확고한 감사는 우리를 둘러싼 것과 우리가 스치는 모든 것이 단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넌지시 일러준다. 『고마워요』에 따르면 세상에 구태의연한 감사는 없다. 우리가 은연중에 구태의연하게 여길지도 모르는 알람, 침대, 샤워, 양말, 스카프, 빵, 잼, 모자……. 이시노리가 일러준 대로 응시하면 감사는 노란빛과 함께 날마다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고마워요, 알람”
“고마워요, 침대”
“고마워요……”
감사가 필요한 순간,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하게 되는 순간, 무엇보다 오늘의 나와 이 세계의 연결 고리가 궁금한 순간. 그때가 바로 이시노리의 『고마워요』를 펼쳐야 하는 순간이다.
책을 향한 끝나지 않는 실험과 탐구
장인의 손끝이 깃든 섬세하고 정교한 이미지 작업
『고마워요』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간하는 이시노리의 그림책이다. 마유미 오테로, 라파엘 위르빌레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이시노리는 뛰어난 이미지 서사를 구현하는 작가이자 아름답고 독창적인 책을 만드는 출판인이기도 하다. 또한 판화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시노리는 수공예에 가까운 고유한 작업을 오랫동안 일궈 왔다. 아틀리에를 운영하며 실크스크린 인쇄와 석판 인쇄 등을 활용하여 직접 선별한 색과 인쇄 방식으로 수십 권의 책을 제작했다. 책의 물성을 향한 실험도 빼놓을 수 없다. 이시노리는 복잡하고 정교한 데다 섬세하기까지 한 팝업북 제작을 통해, 책을 향한 관심과 탐구 정신을 선보였다. 그뿐 아니라 일러스트레이션을 기반으로 한 그래픽 작업, 출판, 시각 예술, 인쇄, 교육 등 경계에 갇히지 않고 작업하고 활동한다. 다방면으로의 활동은 이시노리의 정체성과도 꼭 부합한다.
이시노리는 프랑스 몽트뢰유 국제아동도서전 인터뷰에서 “둘이 함께 작업하면 혼자서는 열지 못할 문을 열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또한 그림책의 특성을 새삼 떠오르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글과 그림이 만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그림책의 고전적 의미를 닮았다. 이시노리의 그림책 작업은 2014년 『한 치 동자』로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에 선정되었고, 2019년에는 『그다음엔』으로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에 선정되기도 했다.
“저희는 서로의 작업을 수정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어요. 라파엘의 스케치를 미유미가 지우개질하고 다시 그려도 괜찮습니다. 반대로 마유미의 작업을 라파엘이 수정할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저희 작업은 마유미가 하는 것도, 라파엘이 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시노리가 하는 것이죠.”
- 이시노리(옮김_최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