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차 트레커의 여유가 담긴, 길과 문화 찾기
삼남길이나 영남길은 이미 역사 속의 길이다. 과거를 보는 선비들이 급제를 바라는 희망으로 도성을 향해 걷던 길이다. 그 걸음, 걸음이 쌓여서 지금의 길이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 길만을 따라 걸을 수는 없었다. 도시의 개발과 새 도로 건설을 통해서 어떤 길은 사라지거나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런 현실에 봉착할 때마다 지도에 의지해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는 길을 새롭게 찾아서 삼남길과 영남길을 완주한다. 저자는 자신이 걸었던 길을 지도에 표시해놓았다가 이 책에 기록해놓았다. 이런 과정은 길을 걷는 사람의 숙명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이미 선배들이 닦아놓은 길의 기록을 밟는 동시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나아가 길 속에 담겼던 문화와 역사를 기억하고 들추어 트레킹의 의미를 확장한다. 단순히 걷기가 아니라 길 위의 역사 찾기를 하는 셈이다.
삼남길, 사연 가득한 곡선의 미학
삼남길의 시작은 다산 정약용의 해남과 강진에서 시작한다. 아름다운 다도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오솔길에는 도시에서 만날 수 없는 편안함 정서가 가득하다. 이 길은 과거를 보러 서울로 가는 길인 동시에 다산이 벌을 받고 유배를 왔던 길이기도 하다. 걸음이 닿는 곳마다 사연이 없는 곳이 없으며, 그 사연에 해당하는 절세의 비경에는 감탄이 머물 뿐이다.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출발하여 강진군, 영암군, 나주시, 광주광역시, 장성군을 거쳐 전북 정읍시, 완주군, 익산시, 충남 논산시, 공주시, 천안시를 지나 경기 평택시, 오산시, 수원시, 의왕시 그리고 서울 관악을 거쳐 마침내 도성인 한양 서울에 이르는 국토 내륙 종단 트레일 삼남대로-삼남길은 45개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남길, 경부고속도로의 신화 이면의 옛길을 찾아서
삼남길, 의주길, 경흥길에 이어 조선의 4대 간선 길로 관헌과 보부상, 유생이 이 길을 따라 숱하게 이동했지만, 아쉽게도 영남길은 삼남길과는 달리 그 궤적이 분명하게 남지 않았다. 저자는 기록에 남겨진 곳은 그 길을 따랐지만 남겨지지 않은 구간에서는 이전에 길을 떠났던 선배가 일러준 길을 기준으로 걷는다. 기록에는 남아 있지만, 때때로 그 기록에서조차 사라지거나 훼손되어 길이 없을 때는 예전에 길을 통해 잇닿던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서 어떻게든 이어 걷는다. 길은 길로써도 존재하지만,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궤적 속에서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남 지역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몇 갈래가 있다. 부산에서 대구를 지나 문경새재, 충주, 용인을 지나는 영남대로가 있고, 부산에서 청도, 영천, 안동을 지나 죽령을 넘는 영남좌로가 있으며, 대구, 김천을 거쳐 추풍령을 넘는 영남우로가 있다. 16일 일정의 영남우로가 가장 긴 길이다. 반면 새재를 넘는 영남대로는 14일의 일정 등이 있는데 저자는 영남대로를 택한다.
길꾼의 길 탐험은 끝나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의 걸어야 할 길을 기록하면서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트레킹은 출발은 있지만, 목적지 닿으면 또 다른 목적지가 생겨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