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수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네가 우는 줄도 모르고 밤새 물들었다』(문학들)를 펴냈다. 시의 언어는 일상의 언어와 다르다. 일상의 언어가 정보를 전달한다면 시의 언어는 정서의 자극을 통해 감동에 이르게 한다. 이 정서를 일깨우는 대표적인 시적 장치가 비유다.
‘닮음’을 노래한 시 「바다를 닮은 창」에 등장하는 중년의 커플은 ‘갯돌’ ‘문어’ ‘나뭇잎’ ‘새’ 등 전혀 상관없는 사물로 비유된다. 바다를 닮은 창을 배경으로 중년의 커플이 앉아 있다. ‘창’이 ‘바다’를 닮은 것처럼 중년의 커플도 서로 ‘바다’이거나 ‘창’이고자 하지만 순탄치 않은 세월을 견뎌온 한 사람은 “갯돌이 된 문어”이고 다른 한 사람은 “나뭇잎이 된 새”처럼 보일 뿐이다.
두 사람은 ‘갈매기’와 ‘보리멸’의 존재만큼 먼 거리를 두고 앉아 있다. 이러한 거리를 통해 화자는 “닮아간다는 건 고난의 길”이며, “신앙을 갖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누군가 누굴 닮아간다는 건/결코 닮을 수 없는 창틀을/비워 놓는 일”이라며 ‘비움’의 마음을 갖는 것이 ‘닮음’으로 가는 길임을 노래하고 있다.
바다를 닮은 창 앞/중년의 커플이 앉아 있다/갯돌이 된 문어처럼/나뭇잎이 된 새처럼/서로의 기억에 셋방을 내어 주며/설 데인 장판에 그림을 펼친다/한창의 열정에 타버린 아랫목/그 검은 터널을 뚫고 온 세월/갈매기는 서해 먼바다를 바라본/이유를 말하지 않는다/보리멸은 구시포를 떠나지 않는/이유를 말하지 않는다/바람이 바다를 닮는 건 쉬운 일/그러나 닮아간다는 건 고난의 길/실망하고 포기한 체념의 기항지/무엇이 무엇을 닮아간다는 건/신앙을 갖는 일이다/누군가 누굴 닮아간다는 건/결코 닮을 수 없는 창틀을/비워 놓는 일이다( 「바다를 닮은 창」 전문)
바다와 창, 갈매기와 보리멸, 문어와 새 등의 이미지들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비슷해 보일지라도 그 내면에는 거리가 존재하며, 그 거리와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닮음’으로 가는 길임을 시인은 강조한다. 비유와 융합의 언어적 장치는 그 자체로 새로운 시적 정서를 만들어 낸다. 이를 통해 시인은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감정의 이면이나 인간 존재의 복잡한 면모를 드러내며, 독자에게 더욱 풍부한 사유의 여지를 제공한다.
연대와 투쟁의 의식
이번 시집에서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은 ‘연대’와 ‘투쟁’의 의식이다. 「우산과 지팡이」, 「꽃길만 걷지 말자」와 같은 시에서 시인은, 상반된 개념이나 대립적인 요소들을 결합하여 더 큰 의미를 창출한다. 이러한 언어적 결합은 시의 주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독자에게 인생과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우산과 지팡이」는 ‘우산’이라는 우비와 ‘지팡이’라는 보행 보조 도구를 결합한 경우이다. ‘우산’과 ‘지팡이’는 길쭉한 생김새와 손으로 드는 도구라는 유사성을 갖지만, ‘우산’은 비를 가리기 위해 하늘을 향해 손에 드는 것이고, ‘지팡이’는 보행을 돕기 위해 땅을 향해 짚는 도구이다. “우산은 홀로/비바람을 견디게 하지 않는” 것이고, “지팡이는 홀로/쓰러지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손에는 우산/한 손에는 지팡이”를 드는 것은 “우리가 길을 걷는 방식”이라고 한다.
이 시는 ‘우산’과 ‘지팡이’의 결합 틀을 바탕으로 반복적으로 관념을 배치함으로써 사물의 의미가 관념으로 확장하는 비유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연민’과 ‘분노’는 ‘세상을 보는 방식’이며, ‘절망’과 ‘희망’은 ‘연대하는 방식’으로 확장한다. 결국 그것은 “우리가 반역과 싸우는/필승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 시는 이러한 표현 방식을 통해 ‘연대 의식’과 ‘투쟁 정신’을 시적 서정으로 승화하고 있다.
유진수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났다. 2021년 『세종문학』 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시집 『바로 가는 이야기는 없다네』를 펴냈다. 현재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원, 독서저널 『책읽는광주』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