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환자 곁으로
2024년은 의료계에도, 환자들에게도 힘든 한 해였다. 국민들의 불안함, 한국 의료체계 붕괴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 그리고 윤리의식이 없는 몇몇 의사들의 행태들은 여전히 의사와 환자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의사들이 펜을 들었다. 때로는 억울한 죽음 앞에 고통스러운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때로는 그 환자를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때로는 더 섬세하게 환자의 아픔을 들여다보기 위해, 그리고 여전히 환자들과 함께하고 싶기에…….
사건을 기록하고 사람을 기억하면서, 벼랑 끝에 서 있는 환자들의 손을 잡아주길 소망하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한 권에 담았다.
- 그렇지만 이 순간에도 사실 너무나 무섭다. 환자가 죽을 것을 알고 있을 때, 내 손으로 환자를 놓아버려야 할 때, 그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직접 수술을 하게 된 후부터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수술하는 환자들에게 내 삶의 하루하루를 나누어 준다는 생각. 환자가 하루 더 살 수 있다면 나는 하루 덜 살아도 괜찮다는 듯,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p.224)
의사가 만난 사건, 사람들의 이야기
의사들은 병원에서 무엇을 보며 어떤 것을 들을까? 또 어떤 마음의 변화를 겪었을까?
수술하던 의사에서 직접 암 환자가 되어 느꼈던 수술방의 온도, 늘 밝은 미소로 주변을 환하게 물들이던 환자에게 중복암과 위암의 뇌전이 소식을 알려야 했던 허탈감, 뇌사 판정을 받은 환자의 장기기증에 앞서 대기 환자들까지 입원한 상황에서 적출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고 밤중에 지검으로 뛰어갔던 급박했던 순간, 식물인간이 된 환자의 호흡기를 떼네 마네 하며 보호자와 실랑이를 벌일 때 들었던 복잡한 심경들…….
환자들과 함께하는 의사들의 진솔한 에피소드, 때로는 묵직하고 먹먹한 사연,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돌이켜 보게 만드는 현장의 감동적이고 생생한 이야기가 이 한 권에 담겼다.
- 환자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양측 모두 같은 것을 원했다. 한쪽이 져야 다른 쪽이 이기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보호자의 반대편에 서야 했다. 우리가 환자들의 편에 서 있다고 믿기 때문에. 환자는 말도 못하고 의식도 없지만, 우리는 그들의 상황을 이해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p.165)
의료계의 신춘문예 ‘한미수필문학상’ 여덟 번째 작품집
제21회, 제22회, 제23회 한미수필문학상 수상작이 실린 여덟 번째 작품집. 의약분업이 한창이던 2000년, 날로 멀어져가는 환자와 의사 간 신뢰관계 회복을 희망하는 취지에서 제정된 한미수필문학상은 매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성장해왔다. 의사가 자신이 진료했던 환자를 소재로 쓴 수필을 대상으로 하는 본 상은, 환자와 의사 사이의 이해관계를 돕고 올바른 환자-의사 관계 재정립에 기여하고 있다. 이번 작품집은 성석제 소설가와 장강명 작가를 비롯한 심사위원들로부터 “23년 동안 축적된 의학수필의 미학적 성취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의사라는 삼각의 결속체 안에서 의사들이 겪는 고민과 갈등, 깨달음과 부끄러움, 다짐과 반성을 섬세한 렌즈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각별하고도 뜻깊은 시간이었다.”라는 찬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