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에서 우리는 돌연 매머드 화석, 그리고 그 앞에 웅크린 작은 인간의 형상을 발견한다. 호모 티모로수스 -“겁 많은 인간”-는 〈어퍼컷〉의 세계관을 그 조그만 어깨에 걸머지고 달려나가는 시적 자아이다. 그는 마치 언어로 이루어진 하나의 감각기관 같다. 이 존재는 불안한 시대 속에서 작고 가벼운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꽉 쥔 주먹 속에는 굳은살을 만들며 깊숙이 파고든 차돌이 있다. 그걸 힘껏 움켜쥔 채, 투명한 거미줄로 의미들을 이어나가며 달리는 그의 날랜 등을 눈으로 좇으며 이 시집을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무심한 뒤통수에 문득 날아드는 차돌에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그는 한사코 자신이 겁 많고 수줍으며 지질하고 안쓰럽다고 강변하지만, 세계의 미세한 균열 틈새로 의미들을 재발견하는 높은 감도란 결국 겁먹은 자들의 것이다. 공룡과 골리앗만큼이나 거대했기에 결국 스러지고 만 과거의 육중한 마른 뼈 앞에서, 겁먹고 땅굴을 파고 숨어들었던 작은 포유류의 후손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아 따뜻한 살을 서로 부비고, 귀를 쫑긋 세우고 코를 벌름거리며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다가는 온 힘을 다해 지금을 달리는 것이다. 공룡이 사라져 간 지질학적 시간을 넘어, 이제 막 눈앞에 다가온 시적인 순간을 달리는 것이다.
이마냥의 시어들은 이불 밑의 완두콩처럼, 진술하지 않고서는 배겨낼 수 없는 밀도 높은 의미의 목록이면서, 입안을 이리저리 구르다 터져 나오는 물리적 실재이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변형하는 물질이다. 쫀득하게 잇새에 길게 들러붙다가는, 돌연 톡 하고 터져 버린다. 요컨대 씹는 맛이 있다. 시상은 이 쫄깃한 말들을 순차적으로 딛으며 도약한다. 허세와 현학, 부당한 권위에 저항하려는 -아무래도, 겁 많은 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소년이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중얼거림, 이미지들의 압력이 문학과 현실 사이의 반투과성 막을 통과하여 독자의 세계로 밀려 들어온다.
...(중략)...‘어쩔 수 없잖아, 시 쓰기는 증상이고… 사람들이 시를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 까놓고 말해서 / 그중에서도 내 시는 더 각별했으면 좋겠다’는 그의 시는 마땅히 ‘송이’ 단위로 세어야 할 것이다. “마침내 여기 가녀린 시 한 송이가 피어났다”고 선언하는 시인의 시들은 굵고 실하고 싱싱한 풀꽃다발이다, 종일 바삐 오가는 구둣발과, 연말 예산이 남을 때면 수시로 갈아엎는 보도블럭 틈새를 비집고 기어이 솟아나는 뿌리의 힘이다.
-164쪽 시집 해설(태이 作)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