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상상력과, 스며듦의 몽상
송희복(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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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연의 시들을 내처 읽으면서, 나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명저로 손꼽히는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1948)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간의 역사는 땅의 역사다. 땅을 기반으로 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또 이것을 다져간다. 땅도 흙으로 된 땅이었다. 땅에도 흙으로 된 땅이 있고, 시멘트 바닥으로 된 땅이 있다. 도시인들은 흙 땅을 밟지 않고 살아간다. 시골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만 시골 사람들 중에서도 농사짓는 사람들만이 흙 땅을 밟고 사는 특권을 향유한다. 오히려 흙 땅을 밟는 것이 특권이 되는 시대다. 국어사전에 ‘흙땅’을 등재된 낱말로 아직도 대접을 해주지 않을 만큼, 그동안 푸대접을 받아온 것이 흙 땅이다.
바슐라르는 시골 사람이었다. 가계도 변변찮은 서민 출신이었고, 프랑스의 엘리트 코스인 소위 ‘그랑제콜’을 나온 것도 아니었다. 시골에서 과학 교사를 하다가 학생들의 상상력을 죽이는 교육에 환멸을 느끼고 물질적 상상력의 이론을 계발해 20세기 프랑스 최고의 문학이론가가 되었다. 그의 물질적 상상력은 땅과 물과 불과 공기로 환원되는 질료였다.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은 『대지 그리고 의지의 몽상』(1947)을 이은 흙 땅 상상력 이론의 놀라운 비평적 업적이요, 사상적 결과물이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우정연의 시편 「모란이 피고 지는 사이」를 읽으면 뭔가 감이 잡히는 듯하다.
꽃밭에 자갈 고르고 흙을 북돋는다 사이사이 이랑 만들어
모란 몇 촉, 사이 좋을 간격으로 자리 잡아 주었다
(……)
모란이 피고 지는 눈물의 시간
별똥별 떨어지고 소우주 하나 생겨나는, 차마 어쩌지 못하는 사이
-「모란이 피고 지는 사이」 부분
꽃밭을 가꾸는 일, 모란을 심고 키우는 일은 공간을 만들어서 시간을 관리하는 자연의 작업이다. 이 시에서의 이른바 ‘사이’는 공간의 틈새이기도 하지만 시간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이 연장선은 모란이 피고 지는 일을 반복한다. 모란이 한 번 피기까지 소우주가 하나씩이 생겨난다. 우정연의 시에는 소우주라고 한 시어가 몇몇 적혀있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대우주와 소우주, 그러니까 자연과 인간, 아니면 밤낮으로 바뀌는 명암의 하늘과 작은 텃밭이라고 하는 이분적인 사유나 몽상이 모든 변증 관계를 설명하기에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의 대지의 상상력은 마침내 ‘대우주-소우주’의 행복한 상응 관계로 귀결하고 있다. 이 글에서 자주 쓰는 용어인 몽상(rêverie)은 꿈 그 자체가 아니라, 마치 꿈을 꾸듯이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생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몽상은 현실을 넘어서는 힘을 가진다. 이 힘이 상상력이다. 그것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욕망이나 소원충족과는 미세한 차이가 없지 않다.
붉은 벽돌색 고무통에 진흙을 반쯤 채우고 연을 몇 뿌리 묻었다
나는 연의 집에 샘물 찰랑찰랑 부어놓고 날마다 주변을 서성거린다
줄기가 진흙 속에서 햇살을 먹고 하루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큼 오른다
손바닥만 한 잎들, 위로 무성하니 얼마 후엔 고운 꽃 볼 수 있겠지
연을 심으면서 바닥에 그윽한 마음 함께 심어 놓았을 까, 흙 속에서
연들이 든 적도 난 적도 없는 향기를 머금어 통통하게 살을 채운다
진흙을 뚫고 오르는 푸른 연잎도 세수했는지 말끔하다
-「연을 심다」 전문
시편 「연을 심다」는 연을 심고 키워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화자는 고무통에다 진흙을 채우고 연뿌리를 심었다. 여기에서 연의 뿌리는 전술한바 뱀의 이미지와 등가의 상관물이 된다. 대문자 S는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는 형상이야말로 뱀이 기어가는 형상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사람들의 인생살이도 뿌리처럼, 뱀처럼 얽히고, 설키고, 꼬이고, 칭칭 감긴다. 뱀과 뿌리는 지탱하는 힘인 동시에, 찌르는 힘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도 엇비슷하다. 다만, 뱀의 이미지와 뿌리의 이미지가 유사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동물과 식물이 지닌 물성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연의 줄기는 진흙 속에서 햇살을 먹고 한 마디씩 오른다. 해바라기가 해의 움직임에 따라, 달맞이꽃이 달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듯이, 연의 줄기 역시 소위 ‘태양감응(héliopathie)’에서 자유롭지 않다. 흙 속에 뿌리를 내리는 만큼, 지상에서는 연꽃을 활짝 피워간다. 연꽃이 활짝 피는 것은 후술하겠지만 불(꽃)의 이미지로 전이된다. 연꽃의 고운 색은 불의 현현(顯現 : épiphanie)이며, 연꽃은 빛의 실재(본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