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시노(武蔵野) 들판에서 고대 한반도 도래인의 언어로 사랑과 바람을 노래하다
한성례(시인·번역가)
극도로 응축된 언어로 쓴 절창의 단시
재일시인 안준휘의 시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 만요슈(萬葉集, 1,400여 년 전에 성립)의 와카(和歌), 단카(短歌, 5·7·5·7·7의 5구 31음절로 짓는 전통정형시), 하이쿠(俳句, 5·7·5의 17음절로 짓는 근세기에 형성된 정형시) 등 일본 고전시의 정형미, 음률, 리듬 등의 형식을 취하여 서정적으로 처연한 내면세계를 펼쳤다. 그 속에 고뇌와 철학이 깔려 있다. 일본의 전통정형시는 각각의 시에 제목을 붙이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일본 전통시가의 단시 작법을 빌려 하나의 거대한 장시로 완성했다. 독특한 이 시집은 일본에서 출간되자마자 크게 화제와 기대를 모았다.
또한 그는 아버지를 통해 조선의 정형전통시인 시조와 한시를 접한 적이 있어, 그의 시에는 한반도의 전통시 세계도 깔려 있다. 그의 시의 형태를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일본의 전통적 단시형인 와카, 단카, 하이쿠가 가진 공통의 본질을 품고 있지만, 글자 수라든가 하이쿠에 들어가야 하는 계절어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썼다.
2. 조형적 아름다움을 염두에 두고, 필요 없는 언어를 최소한으로 생략하여 완성된 형태로 만들었다.
3. 한편 한편은 독립적이지만 전체를 하나로 연결하여 유기적으로 전개했다.
4. 시편들은 소설처럼 이야기성을 가졌고, 음악성을 내포하여 실내악이나 교향곡이 연주되는 것처럼 이어져 있다.
5. 자연이라는 무대에서 인간의 운명과 본래의 자신, 그리고 신 등을 주제로 삼았다.
이 시집은 시인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자신과 관련된 땅과 자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독자적이고 독특한 음률로 그려낸 장대한 장편연작시집이다.
시에 구어체와 문어체가 미묘하게 섞여 있어 자칫 딱딱할 수 있지만, 음악성과 리듬감이 풍부하여 아름다운 서정성이 느껴진다.
일본의 마루치 마모루(丸地守, 1931~)시인은 안준휘 시인의 시를 “고전적 일본어의 시적 표현을 현대시에 살려, 가장 아름다운 일본어로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절찬했다. 또한 야마구치 케이(1928~2016, 시인, 작가. 조선과 일본의 고대문화의 역사적 관계를 중시하여 그것을 알리는 데 힘을 기울였으며, 항상 재일조선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자, 지원자였다) 시인은 안준휘 시인에 대해 “현대 일본의 단시 시인 중 지금까지 아무도 이 시인의 경지를 넘지 못했다고 단언한다. 안준휘의 시는 일본 단시의 전형과 같은 시편들이다. 현재 일본의 시인 중 이처럼 품격 있고 아름다운 문체와 언어를 사용하여 시를 쓰는 시인은 드물다. 일본인들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의 아름다운 일본어다. 일본의 아름다운 시어를 배우고자 하는 분들에게도 모범적인 시라고 생각한다.”라고 최고의 찬사로 평가했다. 이처럼 문고체, 의고체를 살려 운율에 맞춰 시를 쓴 안준휘의 시는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어의 표본으로써 많은 시인들에게 상찬을 받았다.
일본에 1400년 전에는 시가집 『만요슈』가 있고, 중세에는 이즈미 시키부(和泉式部, 978~몰년 미상, 일본 헤이안 시대 최고의 여성시인)의 시가 있고, 현대에는 안준휘의 시가 있다고 칭송받을 정도로 그의 시는 빼어난 일본어와 한자어로 표현되어 있다.
정체성을 초월한 재일 디아스포라 문학의 정수
재일 1세대 시인들은 일제강점기를 직접 겪은 세대들이다. 해방 후에도 일본에서 살아야 했던 그들은 고향과 어머니는 늘 가슴 한쪽을 차지하는 아련함이고 애잔함이었다. 조국의 동족상잔과 분단을 무기력하게 바라보아야 했고, 일본 땅에서 이념에 따라 남과 북으로 갈리었다. 일본에 살며 일본어로 시를 쓰고 창작 활동을 했지만, 시적 정서나 정체성은 조선인이었던 이들 세대는 일본어를 사용할지라도 모국어는 한국어였다.
그러나 재일 2세대 이후로는 재일문학에서도 많은 변화를 한다. 그들은 주로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살아가는 세대들이다. 일본에서 살지만 그렇다고 일본인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영원한 디아스포라, 경계인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재일문학을 크레올(creole,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적인 문화를 뜻하는 말) 문학으로 파악하려는 주장이 새롭게 등장했다. 자기, 언어, 문화인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려는 문화적 사상이다. 크레올 예찬론자들은 주로 해방 이후에 태어난 재일 2세대들이다. 크레올화 한 힘은 토착 문화와 모국어의 정통성을 근거로 구축해온 모든 제도와 지식, 논리를 새로운 비제도적인 논리에 의해 무력화시키고, 인간을 내면에서부터 갱신하고 혁신하는 새로운 비전의 전략을 내포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학을 ‘조선어인가 일본어인가, 조선문학인가 일본문학인가’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관점에서 파악하여 세계적인 문학으로 확장시킨다. 두 나라가 뒤섞인 누더기 언어, 불완전한 언어라고 멸시받아 온 언어를 오히려 새로운 창조물로 구축하고, 언어 표현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또한 모든 면의 혼혈성, 다종성을 플러스 요소로 파악하여, 보다 전략적으로 방법화한다. 일본어·일본문화 자체나 조선어·조선문화 자체를 포함하여 그 어떠한 언어나 문화일지라도 혼합하여 크레올이라는 문화의 기본 구조로 전환시킨다. 이처럼 재일 1세대의 시는 조국을 그리워하고 분단된 조국을 안타까워하는 시가 주를 이루지만, 재일 2세대 이후의 시는 차츰 조국을 바라보는 복잡한 시선, 또는 조국과는 관계없이 일본 전통시가 바탕이 된 시, 해외의 문학적 경향과 접목한 시, 내면의 흐름을 쓴 모더니즘의 시 등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더욱이 재일 3세대 이후의 시인들은 언어와 국경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고 있고, 일본도 한반도도 아니며, 콜로니(colony, 식민지. 집단 거주지 등을 뜻함)도, 크레올도 아닌 새로운 시의 영토를 향해 준동(蠢動)하고 있다.
안준휘 시인의 시는 이처럼 변화하는 재일문학을 대표하는 시 중 하나이며, 정체성을 초월하여 재일디아스포라의 정수를 가진 시, 재일문학의 새로운 영토를 획득한 시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는 한국과 일본을 포함하지만, 그렇다고 어디에도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비애와 운명, 자연을 일체화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 세계를 펼친다.
전통 서정을 구축한 시 세계
안준휘 시인은 재일 2세대다. 일본의 이바라키현(茨城県) 산촌에서 태어나 자랐고, 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했다. 중학교 때 우연히 구니키다 돗포(国木田独歩, 1871~1908, 일본의 소설가, 시인, 저널리스트, 편집자)의 『무사시노(武蔵野)』라는 소설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문학에 눈을 뜬다. 당시 그는 무사시노에 대해 잘 몰랐다. 나중에 대학생이 되었을 때, 우연히 무사시노 지역이 한반도 도래인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사시노의 어원은 서기 600년대에 한반도 도래인들이 직물 기술과 함께 가져온 마의 일종인 ‘모시풀 종자의 들판(苧種子野)’이라는 의미였다. 그것을 알게 된 그는 형용할 수 없는 뜨거움이 가슴속에서 차오른다. 그 소설집을 들고 무사시노의 무사시 사카이역에 내려서자 그때까지 본 적 없는 붉은 색을 띤 커다란 보름달이 두둥실 떠 있었다고 한다. 그가 ‘무사시노 모시풀 들판’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환상 같기도 하고 몽상 같기도 한 그의 무사시노와의 신비한 만남이었다. 그는 1,400년의 아득한 시공을 넘어, 불가사의한 강한 힘에 이끌려 무사시노 땅을 밟았다. 그때까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한국이었지만, 어쩌면 그 심층에 자신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후로 무사시노는 그의 시 세계와 정신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소년시절에 읽은 소설집에 의해 눈뜬 그의 자연관은 ‘자연의 미와 질서에서 신을 보는 경지’에 이른다. 그리고 신이 불러주는 것을 받아쓰듯 무사시노를 소재로 방대한 시를 써나간다.
일본 강점기에 일본에 건너간 재일한국인들은 대부분 신산한 삶을 살았다. 그의 어머니는 부산항에서 16세 때 연락선을 타고 시모노세키로 건너간 제사공장(누에 실 뽑는 공장)의 여공이었고, 같은 경로로 일본에 온 아버지와 결혼하여 자신을 낳았다. 그는 첫 번째 결혼한 재일교포 아내와도 헤어져야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쭉 죽음을 생각했다고 한다. 허무와 상실은 그를 죽음과 친밀하게 했다. 부모님이 정착한 일본인 마을에는 그들 가족만이 유일한 조선인이었던 것도 큰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자연은 언제나 그를 따뜻하게 받아들여 주고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고향의 솔바람과 멧새 지저귀는 소리, 잡초 속에서 도라지꽃이 흔들리는 풍경을 떠올리면 위안이 되곤 했다. 여기서 그의 고향은 한반도가 아니고 자신이 나고 자란 일본의 고향을 말한다. 그는 고뇌와 죽음의 유혹에서 손잡아 준 구원의 여인을 무사시노에서 운명적으로 만난다. 그리고 세상의 중심에 그녀를 두고 쉬지 않고 시를 써내려간다. 그에게 무사시노는 자신의 영혼과 하나인 자연이며, 어렸을 때 부모님께 들었던 부모님의 고향인 분단 전의 한반도이며, 그 상상 속 한반도와 하나가 되는 원고향이었던 것이다.
깊은 적요감과 고요함의 여백
언어를 극도로 응축하여 쓴 안준휘의 시는 페이지마다 넓은 여백을 품고 있다. 이 여백은 시인이 무언가를 전하고자 하는 의미와도 같고, 무사시노에 불어오는 보이지 않는 바람과도 같다. 무사시노에서 보낸 과거가 되살아나, 나무, 꽃, 바람, 물결, 햇빛, 새떼 등 모든 시간과 자연이 페이지의 여백마다 펼쳐져 있는 듯하다.
안준휘 시인은 걷는 사람이며 보는 사람이다. 보는 것, 말하는 것, 침묵하는 것, 그리고 나머지는 여백이다. 투명함이고, 적요감이고, 고요함이다. 이 적요감과 고요함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이 심경에 도달할 때까지의 긴 세월에 걸친 고통과의 싸움, 그리고 보편적인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정신적, 사상적 갈등을 겪으며 다다른 경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시집에는 한도, 원망도 없다. 고통의 그림자도 없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독일 철학을 전공한 영향 때문인지, 그의 시에는 예리한 감성과 엄격하게 언어를 다듬어 한편의 시를 완성하는 견실함이 있다. 수도 없이 무두질한 그의 시는 극도로 짧지만, 하나하나 결코 짧은 시가 아니다. 최소한의 글자 속에 삼라만상과 자연, 고뇌, 사랑,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 등 모든 것이 응축되어 절정을 이룬다.
그의 시는 진한 고독이 느껴지면서도 항상 절망하지 않는 빛을 가졌다. 그 강인한 빛은 타인에게까지 미친다.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현실의 고통과 아픔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140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 무사시노 들판에 서서 멀리 뻗쳐나가는 모시들판의 연기를 바라보며 넓은 대지의 제단에 제사를 드린다.
일본에게 병합당해 고향을 떠나 적국의 시골에 뿌리 내린 아버지와 어린 아들, 그 아이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따스한 눈빛 속에 감춰진 슬픔. 아들은 섬세하게 그 모든 것을 체화하여 자신의 시 속에 녹여냈다.
이 시집을 번역하는 동안, 시에 포함된 음률과 리듬을 살리고, 응축된 언어가 풀어지지 않도록 숨죽여 응시했다. 시인은 떠나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들 또한 자신의 여행을 계속해 나간다. 이 시인과 시집의 여행길을 배웅하며, 그 길에 꽃잎 흩날리고, 햇살 환한 여로이기를 염원한다.
이 시집은 일본의 명문 출판사 시초샤(思潮社)에서 출간된 『무사시노(武蔵野)』를 바탕으로 번역했음을 일러둔다. 격조 높고 단아한 안준휘 시인의 시가 자신의 뿌리이자 부모님의 고향인 한국에서 널리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