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하고 정확한 기록을 남기려는 저자의 노력과
역해자의 철저한 비교를 통해 드러나는 사료적 가치
저자 오지영은 익산 지역에서 동학농민전쟁에 직접 참여하고, 동학이 천도교로 전환된 이후에도 혁신파의 주요 인물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1920년대 만주에 있는 기간 동안 『동학사』의 초고를 작성하고, 귀국 후 수정을 거쳐 1940년 영창서관에서 이 책을 정식 간행하였다. 그가 이 책에서 동학의 내부자로서 기록을 세세히 남긴 덕분에 동학 지도자들의 발언과 토지 분작, 천민의 처우 개선 같은 농민들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들을 알 수 있다. 물론 동학의 역사를 기록한 책은 여럿 있지만, 『동학사』가 동학 창시와 농민전쟁의 과정을 가장 상세하게 다루고 있으며, 그중 폐정개혁안은 이 책에만 남아 있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 동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까지 채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우리가 동학농민전쟁의 상황을 동학 농민군의 입장에서 재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사료이다.
이뿐만 아니라, 오지영이 전봉준을 최제우, 최시형, 손병희와 동등한 반열에 올렸던 이유, 당시 떠돌던 여러 전설을 수집하여 실은 취지, 일제의 검열 속에서 기록하고 누락한 것 등 그 행간을 읽으면 당시 상황을 더 입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다.
그러나 근래 여러 연구자에 의해 이 책은 사료로서 결함이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작성 시점이 농민전쟁이 끝나고 한참 후라는 점, 저자가 제목에 ‘소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 개인의 시점에서 기록되어 오류와 과장이 섞여 있다는 점 등 여러 한계가 지적되었다.
이 책의 역해는 이러한 한계를 염두에 두면서 작성되었다. 역해자는 기록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동시대 동학에 대한 기록들부터 최신의 연구 성과들까지 두루 살피면서 앞서 제기된 비판들에 대해 재고한다. 특히 만주에서 작성된 초고본과 귀국하여 고쳐 낸 간행본을 꼼꼼히 비교하여, 오지영이 『승정원일기』와 같은 타자의 기록을 대거 참고하여 객관성을 확보하였으며 농민전쟁 현장을 답사하고 당사자와 후손들을 만나 후일담을 전해 들으면서 자칫 잊힐 수 있었던 사실들을 남기고자 노력했음을 밝힌다. 또 토지개혁을 포함한 폐정개혁안이 농민전쟁 당시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후대의 조작이라는 비판에 대해, 동학이 유학 내부의 토지개혁론 계통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이며 당대에 충분히 등장할 수 있는 주장임을 확인한다.
최제우 탄생 200주년, 동학농민전쟁 130주년에 다시 읽는
새 세상을 꿈꾸는 민중들의 현재 진행형 역사
광복 이후 한국에서 동학농민전쟁은 한편으로는 권력자들이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이었고, 한편으로는 독재에 맞서 민중과 민족의 문제를 고민했던 사람들의 사상적 연원이었다. 이 때문에 『동학사』는 한때 널리 읽히는 책이었으나, 1987년 이후 점차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이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동학사』에서 오지영이 회고하는 동학의 역사는 어쩌면 계속 실패해 온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저자가 1940년 이 책을 출간할 당시에도 동학농민전쟁은 이미 50년이나 지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사건을 건조하게 나열하지 않고, 당시 민중의 생생한 증언으로 그들의 꿈과 노력을 전하려고 했던 것은 그 일을 과거의 것으로 끝내지 않기 위함이었다.
동학의 출발점이자, 당시 민중이 염원했던 모두가 존중받는 세상은 두 세기를 넘은 오늘날 우리 역시 바라고 있는 세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학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바람과 비 서리와 눈 지나간 뒤에, 한 나무에 꽃 피면 만 그루에 봄이로다”라는 최제우의 시처럼, 오지영과 증언자들은 독자들과 함께 봄날을 기다린다.
* 규장각 대우 새로 읽는 우리 고전 총서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대우재단이 공동으로 펼치는 고전 새로 읽기 사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