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서백제의 비밀과 나제동맹, 법흥제의 개혁과 가야의 멸망, 진흥왕과 화랑 이야기!
말기 〈5호 16국〉시대 및 통일제국 수와 벌이는 〈여수전쟁〉의 웅혼한 역사!
흔히 흉노나 선비 등의 북방민족을 오랑캐라며 비하하지만, 사실 이들은 고조선에서 분화한 민족들로 우리 韓민족과는 동족에 가까웠다. 다만 이들은 종주국 韓민족과의 충돌보다는 소위 인심사한(人心思漢)에 젖어 중원으로의 진출을 선호했다. 그 결과 여러 민족이 번갈아가며 중원을 지배하는 대국이 되어 우리민족을 핍박한 것이 이들에 대한 증오를 키웠다. 그렇게 중원의 지배자로서 漢족의 역사로 편입되었지만, 그 이전까지 이들의 숱한 역사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암흑시대라 일컫는 6C 말 통일 수당시대 이전 4백 년에 달하는 〈5호 16국〉시대는, 7백 년 고구려를 비롯한 삼한의 역사와 중첩되어 더없이 중요하다. 《고국》 8권에서는 바로 말기 〈5호 16국〉시대에 최상의 지위를 누리던 고구려가 쇠락해가고 수가 중원을 재통일하는 과정이 전개된다.
476년 백제 왕자 곤지가 신라 금성에서 고구려 풍옥태자와 전후처리를 위한 〈삼국협상〉에 나선 결과 고구려가 철수한다. 그러나 해씨 일가에 의해 곤지와 문주왕 형제가 피살되고, 야마토에서 귀국한 곤지의 아들 모대가 보복에 나서 13살 삼근왕과 해씨들을 제거하니 동성대왕이었다. 484년 북위 효문제가 요서백제군을 침공, 1차 〈제위전쟁〉이 발발하자, 동성왕은 고구려와 화친으로 배후를 다진 뒤 전격적인 해상원정으로 2, 3차 〈제위전쟁〉에서 연거푸 대승을 거둔다. 80년을 재위한 장수제 사후 문자명제는 요서백제를 공략하고 백제와 신라는 〈나제동맹〉으로 맞선다. 501년 동성왕 사후 요서백제군이 붕괴되고 무령왕은 남선정책으로 돌아서 임나재건에 매달린다. 위화와 옥진 부녀가 주도하는 선도가 기승을 부리자, 개혁군주 법흥제는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유·불교 진흥에 나서고, 532년 금관의 구해왕이 신라에 나라를 바친다. 538년 백제의 성왕은 사비 천도와 함께 〈남부여〉를 칭하지만, 〈나제동맹〉을 깨뜨리고 한강 및 함경 일원까지 진출한 진흥제는 562년 가야 전체를 병합해 버린다. 야마토에 불교를 전한 위덕왕의 서자로 서동요의 주인공인 무왕이 권력을 찬탈해 즉위하고, 진평제의 신라에 압박을 가한다.
낙양으로 천도한 〈북위〉는 급진적 한화정책을 추진하지만 호태후의 섭정에 이은 〈육진의 난〉을 계기로 534년 고환과 우문태의 동서위로 나뉜다. 중원의 분열은 고구려를 맹주의 지위로 올리고, 안장제와 안원제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숙명의 라이벌 고씨와 우문씨 일가는 〈북제〉와 〈북주〉의 주인이 되지만, 576년 우문옹이 북제를 멸하고 하북의 승자가 된다. 그러나 양견이 황위를 찬탈, 〈수〉를 건국하고 589년 〈진(陳)〉을 멸하면서, 약 3백 년 만에 중원이 재통일된다. 150년 평화를 구가하던 고구려에서는 여인이 재상에 오르고 정치가 문란해지더니, 586년 평원제는 창려평양으로 천도한다. 〈사탕새서〉로 협박을 일삼던 수문제가 598년 마침내 1차 〈여수전쟁〉을 일으키지만, 강성군주 영양대제와 강이식 장군이 〈임유관전투〉에서 수의 30만 대군을 괴멸시킨다. 이로써 고구려가 대륙의 패권을 놓고 마침내 수당과 사활을 건 백년전쟁에 돌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