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허무가 가득찬 그때
우울로 가득 찬 어느 날 ‘내가 죽더라도 가족들은 다 알아서 잘 살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없어서 슬픈 건 잠시뿐이고, 인생의 고난쯤이야 다들 하나씩 있으니 나 하나만 그냥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 둘째 아이는 아직 어린데 엄마가 없으면 조금 애처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고 싶으면서도 아직 한글도 모르는 아이가 걱정되었는지 ‘도대체 내가 왜 죽고 싶은 건지 이유라도 찾아보자.’라는 마음이 생겼다.
나는 언제 제일 신이 났는지, 스트레스는 받지만 언제 제일 뿌듯한 마음이 들었는지 생각해 보니 무엇인가 배우러 다닐 때, 무엇인가 주도해서 만들어 낼 때 재미를 느꼈다는 것이 떠올랐다. 자존감이 높지 않아 무엇인가 결과물이 나오면 ‘나도 해냈다.’ 라는 생각에 매우 기뻤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서 ‘그래도 내가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힘든 시간을 버텨내 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예민하다라는 단어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가득했다. ‘예민하다’를 ‘남들에게 피해를 주다, 자기 마음대로 하다’의 동의어로 받아들였기에 나는 예민한 사람이 결코 아니라고 부정하곤 했다. 하지만 예민한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는데 나는 나에 대해 예민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사람은 엄마, 직장인으로 불리기보다 나로서 무엇인가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는데 엄마, 아내라는 이유로 내 안의 욕구를 애써 잊으며 우울하게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짜증 섞인 감정 속에서
매일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만 살피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안쓰러운 나를 위해 해주고 싶은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를 안아주다
‘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무엇을 해야 한다’라는 사고의 전환이 일어났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나를 즐겁게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탐색하는 과정에서 이것을 꾸준히 하면 몇 년 후에 나는 이렇게
변화되겠구나라는 미래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길고 긴 여정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끝이 아닌 지속적인 성장의 과정이라면 더 이상 인생을 허무하게 바라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성장의 개념으로 인생을 바라보니 내가 지금 잘하지 못해도, 내가 지금 만족할 만한 상태가 아니더라도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나아지겠지라고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내 안에 화로 쌓인 거대한 탑이 스르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짜증은 많지만 성장하고 싶었던 나, 짜증을 내면서도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나, 짜증 내는 나 자신이 싫었던 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기로 했다. 앞으로의 인생은 지금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안아주며 삶의 긴 여정 속에서 ‘나’를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닌 나이 들기를 결심하다
내 안에 화로 쌓인 거대한 탑이 조금씩 무너지면서 매일 나를 잘 돌봐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매일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도전을 찾아 실행하고 성취감을 얻어 하루를 살아가는 에너지로 나를 가득 채우고 싶었다. 그리고 단순히 ‘나이만 먹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꽃 피우며 열매를 맺고 씨앗을 다시 땅에 남기는 과정으로서 ‘나이 들기’를 즐겁게 완수해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에 따라 나를 맡기는 것이 아닌 지금 이후의 삶에 대해 목표를 세우고, 어떤 노후를 맞이할 것인지 그림을 그리며 삶의 길이가 아닌 삶의 깊이로 나를 증명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꿈꾸는 소망은 단순히 혼자만의 생각으로 스쳐 지나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의 생각은 찰나에 흩어지고, 흩어진 생각들을 다시 모으기에는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소망인 ‘아름답게 나이 들기’를 위해 앞으로 어떻게 이 과정들을 즐겁게 해내고 싶은지를 글로써 선언하고자 한다.
송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