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과학과 인문학이 만나 100년 전 역사를 깨우다!
총 744편의 연재물 발굴, 총 4만 7,777건의 이미지 파일 분석
《멍텅구리》는 1924년 10월 13일부터 시작해 1927년 8월 20일까지 3년 가까이 거의 매일 《조선일보》에 연재되었고,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1933년 2월 26일 6년 만에 재개돼 그해 8월 2일까지 연재되었다.
10여 년에 걸쳐 연재된 연재물을 신문 디지털 아카이브에 ‘멍텅구리’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는 것만으로는 누락되는 연재분이 많아 전편을 빠짐없이 확인하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이서준 석사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김병준 교수는 네컷만화 이미지를 탐색할 수 있는 ‘YOLOv5_FPC’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활용해 총 4만 7,777건의 이미지 파일을 분석했고, 726건의 《멍텅구리》 연재물을 확인했다. 또한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전봉관 교수와 석사과정 장우리 학생은 연재물을 하나씩 확인하며 알고리즘이 찾지 못한 18건의 연재물을 추가로 확인했고, 현대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현대어 풀이와 주석을 친절하고 꼼꼼하게 달았다. 저자들은 데이터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이 없었다면, 이 방대한 작업을 시도하려는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멍텅구리》의 출간 의의를 밝혔다. 과학기술과 인문학이 손을 맞잡아, 장구한 세월 속에 묻혀 있던 ‘멍텅구리 최멍텅’의 이야기가 마침내 《멍텅구리》라는 이름으로 현대 독자들 앞에 되살아났다.
“에… 세상 사람이 나를 멍텅구리라고 놀리지만…
내가 보기에는 세상 사람이 모두 멍텅구리로 보입니다”
식민지 현실의 희로애락과 사회적 맥락을 포착한
문화사적·역사적 기록과 해설
작품에 실린 744편의 이야기는 세 명의 주인공들이 벌이는 코믹한 해프닝과 황당하고 엉뚱한 사건들, 유쾌한 소동을 통해 당시의 현실을 보여준다. 최멍텅은 경성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똑딴’(어여쁜) 기생 신옥매에게 한눈에 반해 그녀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구애하다가(〈헛물켜기〉편) 그녀와 ‘밀당’하며 사랑을 키워가고(〈연애생활〉편) ‘경제적 자립’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서 돈을 벌며(〈자작자급〉편) 함께 ‘스위트홈’을 꾸리고 아들 똘똘이를 낳아 키우는가 하면(〈가정생활〉편),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는 신혼 생활을 보내다가 일상이 무료해지면 절친이자 영악한 ‘꼬붕’인 윤바람과 함께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세계일주〉편). 기나긴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단번에 선각자라도 된 듯이 각종 모임, 연회에 초청돼 ‘세계일주 다녀온 썰’을 풀고 주워들은 외국어 몇 마디를 맥락 없이 뽐내며 꺼떡댄다(〈꺼떡대기〉편).
어쩌다 가세가 기울면 가난 때문에 굴욕을 당하기도 하고, 빈궁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가난살이〉편). 그럭저럭 형편이 나아지면 이런저런 단체들에 얼굴을 내밀며 ‘감투’ 욕심도 부려 본다(〈사회 사업〉편). 새사람이 되겠다는 각오로 학교 문을 두드려 때늦은 학생 노릇도 경험해 보고(〈학창생활〉편), 소소한 일상에 재미도 붙여 본다(〈또나왔소〉편). 한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6년 만에 ‘인텔리’가 되어 나타나서는 아버지 유산으로 경성 유흥가를 누비며 환락에 빠져도 보고(〈모던 생활〉편) 사회부 민완(敏腕) 기자로 변신해서는 ‘도꾸다네’(특종)를 찾아 경성 거리를 헤맨다(〈제1편 기자생활〉편).
이렇듯 100년 전 멍텅구리 최멍텅의 인생 역정은 오늘날 한국 사회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의 삶과 묘하게 다른 듯 닮았다.
그 외에도 〈3ㆍ1 비상경계대와 만세운동〉 〈일제강점기 신흥종교〉 〈경성의 ‘밑바닥 세계’〉 〈자극과 유혹의 시대, 경성의 카페 문화〉 〈단두 유아 사건〉 〈을축년 대홍수와 도시개발〉과 같은 식민지 시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40편의 근대사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