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발행하며
도서출판 b에서 이정현 문학평론가의 〈무너진 세계에서 꿈꾸기: 전쟁, 인간 그리고 예술〉을 발간하였다. 이 책은 20세기의 가장 큰 전쟁인 제1,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전쟁’의 상황, 혹은 파국의 상황 속에서 살아간 ‘인간’들의 크고 작은 선택들과 그 결과를 문학, 미술, 영화, 사진 등 다양한 ‘예술’ 작품과의 연관성 속에서 짚어보는 책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국방일보〉의 ‘전쟁과 인간’ 코너에 연재한 글 가운데 엄선한 글들을 모았다.
글쓴이가 바라보는 전쟁은 단순히 어떤 역사적 사실로서의 전쟁이 아니라, 당대를 살던 인간에게 실존적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 그 자체다. 전쟁이라는 가혹한 딜레마를 통과하다 보면 그 안에서 인간의 적나라한 민낯이 드러난다. 이러한 상황은 과거와 현재가 동일하다. 기꺼이 양심을 버리고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자들, 깊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자들, 자신의 과오를 끝내 모른 채 생을 마감하는 자들,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방관한 자들이 생겨나며, 이들은 모두 전쟁 이전에는 우리 옆에서 이웃으로 살던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이다. 누군가는 국가와 집단의 정당성을 해친다는 명분 아래 공식적인 기록과 기억에서 지워졌다. 그러나 어떤 자들은 망가진 세계에서도 마지막까지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은 채로 스러져갔다. 이 여러 선택과 결과들을 지은이는 ‘무너진 자들’, ‘통과한 자들’, ‘누락된 자들’, 그리고 ‘꿈꾸는 자들’의 범주로 묶었고, 그 네 가지 인간의 모습들에 해당하는 인간과 예술을 명징하고 가독성 있는, 그러나 힘 있는 언어로 기록하고 있다.
문학평론가이면서 국문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개인적으로는 ‘전쟁 덕후’이기도 해서, 그동안 전쟁에 관련한 수많은 자료들을 탐독해왔다. 저자의 첫 책 역시 한국전쟁을 다룬 외국문학에 대한 비평서인 「한국전쟁과 타자의 텍스트」였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저자는 문학과 전쟁과 예술에 대한 그동안의 지식과 성찰을 끌어모아 이 글 전체에 쏟아부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우리에게 익숙하거나 낯익은 이름들도(히틀러, 괴벨스, 다자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 헤밍웨이, 카뮈, 로맹 가리, 로버트 카파, 안정효 등) 있지만, 낯설고 처음인 이름들이 훨씬 많다. 유제프 차프스키, 카렐 차페크, 게일 할보르센, 타냐 크라스냔스키, 바오닌, 엔도 슈우사꾸, 잉그리트 폰 욀하펜, 오노다 히로, 니콜라이 바빌로프 등에 대한 저자의 스토리텔링을 읽고 있노라면 우리는 아직 전쟁을 많이 모르고 있음을 은연중에 깨닫게 된다. 독자들이 재미있게 이 글을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인가 20세기의 전쟁들 속에 피었다 진 수많은 인물들의 에피소드와 그들이 남긴, 혹은 그들과 연관된 예술의 목록들이 머리에 남게 될 것이다. 각각의 글들을 읽으며 흥미가 생겨났을 때 다시 그 인물과 예술에 관한 책과 영화와 작품들을 찾아 더 깊이 탐구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그 자체로 20세기 전쟁사에 대한 박물지 역할을 할 수 있음과 더불어 새로운 공부와 탐구의 방향을 세워주는 길잡이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의 말
전쟁을 경험한 자들과 우리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전쟁을 직접 겪으면 깨닫게 되리라는 조언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들과 ‘나’의 공통점, 다시 말해 모든 인간의 공통점은 자명하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갈 시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만약 전쟁이 없는 시대를 살았더라면,
그레이스 M. 조의 어머니 ‘군자’는 기지촌을 전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악명 높은 친위대장 하인리히 힘러는 시골의 양계장에서 닭을 기르며 늙어갔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 수백만 명의 미국 젊은이들이 대서양을 건너는 대이동이 없었다면 스페인 독감의 전파력은 다소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에곤 실레는 조금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고트프리트 벤 역시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모두 군의관으로 참전하는 곤혹스러운 삶을 살지 않았으리라. 뉴욕 거리를 헤매던 브레히트는 슬픈 시를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난징에 파병되지 않았으므로 하루키의 소설은 덜 우울했을 것이다. 당신과 나, 우리도 마찬가지다. 저성장과 혐오의 시대, 심각한 기후 변화의 시대에 살아가기를 스스로 선택한 자는 없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말처럼 모든 인간은 외설의 산물이자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다. 이 사실을 자각할수록 그들의 선택과 고통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지금 세계는 다시 전쟁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와중에 가자 지구에서도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대만해협의 긴장도 높아지고 있으며 한반도에서는 지난해 9·19 군사 협정이 파기됐다. 어느 때보다도 전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시기에 전쟁을 겪은 자들의 이야기를 엮었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 사이의 믿음을 파괴한다. 무수한 전쟁을 겪은 인류의 역사가 그 증거다. 그래서 전쟁을 논할 때면 자연스럽게 과거로 눈을 돌리게 된다. 홀로코스트와 제노사이드, 학살과 파괴의 풍경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그렇지만 현대인들은 전쟁을 뉴스와 게임처럼 소비하면서 타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결핍에 채우고자 이미지의 생산과 소진을 반복한다. 기억과 서사가 데이터로 전락한 시대에 전쟁이라는 비극을 통과한 자들의 삶과 텍스트는 고통을 사유하는 법을 알려준다.
(‘옮긴이 후기’에서)
전쟁 속 인간의 선택에 대해 지은이가 방점을 찍는 것은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이들, 즉 ‘꿈꾸는 자들’이다. 생활세계 전체를 파괴하는 파국적 상황에서도 솔제니친은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 했고,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의 범죄를 잊지 않으려 했고, 귄터 그라스는 자신의 소년 시절을 고백했고, 그레이스 M. 조는 어머니의 삶을 복원하려 했다. 어쩌면 파국 속에서 인간은 더욱 빛을 발한다. 이 찬란한 아이러니. 이 책이 발간되는 오늘, 45년 만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해제되며 정국이 혼란 상황 속에 있는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도 이 아이러니는 다시 보인다.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이 사퇴를 거부하고 여당의 보이코트로 탄핵이 1차 좌절된 혼돈의 상황 속에서도 여의도를 점령한 시민들, 무엇보다 20-30 젊은이들이 ‘아파트’를 부르며 탄핵을 외치는 모습이야말로, 저자가 이 책에서 톺아냈던 ‘무너진 세계에서 꿈꾸는 자들’의 바로 그 모습이다. 이 책이 이 시기에 읽혀야만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