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은 희망의 얼굴을 하고 온다…….’
영특한 미래인류가 그린 서울의 새로운 지형도
도발적 상상력으로 쌓아 올린 한국형 디스토피아의 초석
21세기 중반, 전세계를 뒤덮은 전염병과 전쟁의 후폭풍은 인류 문명을 초토화시켰다. 변이를 거듭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세계 75%의 목숨을 앗아갔고, 국가 간 전쟁과 아귀다툼은 제3차대전으로 번졌다. 아무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대비하지 못했던 재앙은 국가의 장벽을 빠르게 무너트렸다. 이런 혼세의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대한민국, 특히 서울은 ‘전국기업인연합(전기련)’이 통치권을 거머쥐며 도시국가 ‘뉴소울시티’로 재탄생한다.
전기련 체제 이후 첫 50년은 그야말로 태평성대였다. 기업인들은 타락한 정치인들과는 달랐고, 그 사이 의학기술은 놀랍도록 발전해 이들은 줄기세포 연구물의 상용화로 영생을 누리는 신인류가 되었다. 이들이 이런 기술을 선점할 수 있었던 건, 전기련 의장 ‘류신’의 강한 욕망과 전폭적인 지지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기술의 혜택이 모든 시민이 아닌 선택받은 극소수에게만 주어졌다는 점이었다. 이제 상류층이 사는 1구역과 일반 시민이 사는 2구역 거주자들은, 더이상 똑같은 삶도, 똑같은 죽음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2구역에서도 쫓겨난 낙오자, 해고자,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 3구역을 이루었다. ‘더러운 쥐들끼리 산다’ 하여 ‘쥐독’이라 불리는 이곳, 흉흉한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죽음의 땅. 그러나 죽음의 땅에도 삶은 있었으니, 변화의 조짐은 가장 비루한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기업은 신이 되고 인간의 생명은 상품이 된 세상,
생의 가치를 되찾기 위한 치열한 투쟁!
작가 이기원은 상상에 그칠 수 있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미래 서울을 완벽하게 구축했다. 소설의 시작을 장식하는 ‘서울 연대기’는 작가가 얼마나 치밀한 설정과 디테일로 세계관을 구상했는지 알 수 있고, 이런 완벽한 세계관 설정 덕분에 『쥐독』은 아무도 경험하지 않은 미래사회를 그리고 있음에도 허황되거나 이질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폭발하는 인물들의 감정선은 독자들의 몰입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며 장르 읽기의 즐거움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희망 없이 살아가던 2구역 노동자에서 쥐독으로 쫓겨나 힘의 법칙을 체득한 ‘민준’, 불사영생의 비밀을 손에 쥐고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는 ‘류신’, 그리고 전기련의 독점적 체제를 무너트리고 모두에게 공평한 죽음을 되돌려놓으려는 ‘반자본청년연맹’의 리더 ‘태일’이 바로 『쥐독』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특히 우리는 무엇보다 태일의 캐릭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태일은 지금의 도시 구조를 만든 류신과, 자신이 내던져진 사회에 빠르게 적응하며 그 안에서의 길을 찾는 민준 사이에 끼어들어, 체제를 뒤엎고 구조를 재창조하려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태일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도 모른 채 서로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는 쥐독 인물들에게 “맞서 싸워야 할 것은 쥐독에 빠진 서로가 아니라 쥐독을 만든 자들”이라고 강하게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싸울 게 아니라 힘을 합친다면 “저들이 탐욕으로 만든 이 감옥 같은 도시를 무너뜨리고” 모두가 “공평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설득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아야 하고, 누가 악인지 바로 보아야 하며, 마침내 행동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일을 자행하는 태일의 강한 의지 이면에는, 전기련의 만행에 가족을 잃었던 아픔과, 그렇기에 이 비극을 막아야만 하는 사내의 간절함이 묻어 있다.
“저들에게도 죽음이 공평하게 돌아가야 합니다. 저들이 저런 초월적 행동을 저지르는 이유가 바로 죽지 않기 때문인 거죠. 죽지 않으니까 다른 이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죽지 않으니까 그들이 우리와는 다르다는 편협한 우월감을 가지게 됐죠. 그래서 우릴 이용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죽이는 겁니다. 그러니 죽음이라는 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진정으로 공평한 세상이 옵니다.” _본문 중에서
태일의 진심 어린 호소에, 처음엔 태일을 경계하던 쥐독 사람들은 하나 둘 마음을 열고 힘을 보탠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끝까지 태일을 냉소하며 부정했던 민준도 함께였다.
한편, 류신은 사사건건 자신의 계획에 훼방을 놓는 ‘반자본청년연맹’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1구역 거주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줄기세포를 습격하질 않나, 옛 육신을 버리고 새 육신을 취하는 신성한 공간에 폭격을 가하질 않나. 전기련의 직원들은 이런 일을 그저 반란군의 소행쯤으로 여기지만, 류신은 알고 있었다. “제방을 무너뜨리는 건 폭우가 아니”라 “작은 구멍”이라는 걸. 그렇기 때문에 류신은 이 작은 소동조차 그냥 넘길 생각이 없다.
‘나는 절대, 나의 왕국과 나의 도시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끝까지 신 앞에 무릎 꿇지 않을 것이다.’ _본문 중에서
삶과 죽음, 인간과 사회, 윤리와 기술에 대한
본질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질문들
묵직한 주제의식을 섬세히 묘파해나가는 캐릭터와 디테일의 힘
『쥐독』은 죽음에 대한 오랜 사유와 삶에 대한 깊은 통찰 끝에 탄생한 작품이다. 기술의 혜택이 오히려 권력의 도구로 쓰이는 기형적 미래 세계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기술의 진보와 의학의 발전으로 보다 나은 세상이 올 거란 낙관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과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본질이 배제된다면 기술의 진보는 ‘양날의 검’보다 더 날카로운 무기로 변모하지 않을지. 그리고 이 소설은 그 자체로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으로 기능한다. 대답을 빙 에두르지 않고 곧바로 돌진하는 힘은 작가의 무기라고도 할 수 있는 생생한 캐릭터와 치밀한 디테일이 빼곡한 탄탄한 세계관에서 비롯될 것이다. 뉴소울시티가 미디어를 이용해 대중을 호도하는 방법이나, 옛 육신을 버리고 새 육신을 얻는 ‘착복식’ 과정, 쥐독 구역과 쥐독 인물들에 대한 놀랍도록 치밀한 묘사는 책을 통해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선택받는 소수만이 누리는 건강한 삶과 안온한 죽음, 정보와 기술마저 뚜렷한 격차가 존재하는 세상. 암울하게만 보이는 이 세계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현재 우리 사회의 단면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터. 그러나 삶과 죽음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려는 이들의 뜨거운 투쟁을 확인한다면, 앞으로 맞을 세계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