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나 놓치며 살아야겠다
『늠름한 허름』은 양광모 시인의 열아홉 번째 신작 시집이다. 그는 시인의 길로 입문한 후 속초, 양양, 목포, 순천, 사천을 거쳐 현재 포항에 머물고 있다. 고인 물이 아닌 흐르는 물의 삶을 살며 그 여정에서 깨달은 정서와 사유를 이번 시집에 담아냈다. ⌜막차나 놓치며 살아야겠다⌟를 통해 시인은 자신의 인생관을 드러낸다. 경적, 기적, 뱃고동 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지는 세상이니 막차를 놓쳐도, 돌아갈 곳에 돌아가지 못해도,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해도, 살짝 섭섭한 웃음이나 지으며 초연히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또한 시인은 “내가 이 시를 쓰고 당신이 이 시집을 읽는 건 정말 우연에 불과한 일일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혹시 세상에는 필연과 우연만이 아닌 그 중간쯤의 사건들도 존재하는 건 아닐까”(⌜필우연⌟)라며 "필우연"이라는 시어를 통해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현상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그를 통해 자유 의지와 생의 의미 사이의 조화를 꾀한다.
경적과 기적과 뱃고동 소리,
끝없이 세상에 울려퍼지는데
막차나 놓치며 살아야겠다
돌아가야 할 곳에 돌아가지 못하고
만나야 할 사람 만나지 못하며
그것참, 그것참, 섭섭히 웃으며 살아야겠다 ⌜막차나 놓치며 살아야겠다⌟ 中
청빈淸貧: 성품이 깨끗하고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어 가난함.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시인은 삶의 무게에 대한 고뇌 끝에 “옷과 신발, 모자 등을 사지 않을 것”이라는 결심에 이른다. “껍데기가 바뀌면 알맹이도 바뀌겠지”(⌜소나무여, 미안하네⌟)라는 믿음으로 허위와 욕망에서 벗어난 ‘청빈’과 ‘허름’을 생의 화두로 삼는다. 그렇지만 나약하고 수동적인 허름이 아니라 강인하고 능동적인 "늠름한 허름"이 그가 도달하고자 애쓰는 이상향이다. 아울러 시인은 ⌜지류支流⌟에서 개울, 강, 바다, 구름, 그리고 다시 개울에 이르는 순환론적 세계관을 제시하며 지류가 곧 주류主流임을 역설한다. 동일한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늠름한 허름"은 결국 "늠름한 풍요"로 치환될 수 있을 것이다. 양광모 시인의 독자라면 익숙해 있을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넘어 초월과 무욕의 세계에 대한 담담한 제언이 이번 시집을 관통하고 있다.
허름한 삶을 살아야지
풍요나 풍족은 멀리 두고
허름한 옷, 허름한 식사, 허름한 인정을 즐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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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허름은 벗어버리고
허름의 부유함을 즐겨야지
늠름한 허름을 살아야지 ⌜늠름한 허름⌟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