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아름다움과 시적 표현으로
세계적 호평을 받은 리노컷 그림책
책의 펼침 면은 검은색 선과 면으로 가득 차 있고 주인공인 찌르레기의 부리와 다리만이 노란색으로 빛난다. 이렇게 책에 사용된 색상은 단 두 가지. 그러나 사실 하나가 더 있다. 바로 바탕을 이루는 흰색이다. 음각과 양각, 흑과 백의 대비로 판화 작품만의 강렬함이 돋보인다. 판화 그림에서는 원하는 결과물과 반대의 화면을 구상하는 반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 작품의 특징은 찌르레기와 물총새의 노래에서 절정을 이룬다. 마주한 두 새가 물에 비춰져 마치 거울처럼 반전되어 드러난 모습. 물 그 자체는 투명하여 보이지 않지만, 가만히 바라보는 이에게 조금 다른 시선으로 자신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책이 출간과 함께 8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및 출판되고, 네덜란드를 넘어 여러 국제 아동·그림책 어워드에서 우수도서로 선정되거나 수상의 영광을 얻을 수 있었던 매력은 무엇일까. 흑백의 강렬하고도 분명한 그림과 울림이 깊은 문장 속에 나와 우리, 동물과 자연, 생명과 지구에 대한 아름다움과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두운 밤에도 모든 색은 빛나기에
살아 있을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상실감과 우울함을 남겼다. 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소설 작가로 출발했지만, 2020년 코로나 시대의 우울과 삶에 대한 고민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며, 자신의 예술적 표현 방식을 더 확장하기에 이른다. 출판사의 제안으로 그림책 작업을 시작한 옥타비 볼터스는 곧 리노컷 판화의 매력에 빠져들어,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들을 연달아 출간한다. 어떻게 보면 친환경 소재인 리놀륨을 처음 개발하고 생산한 네덜란드의 작가에게 리노컷은 적절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리노컷 작품은 대체로 한두 가지 색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러 색으로 구현될 수도 있다. 그러나 책에서 작가가 검은색을 주로 사용한 이유는 아마도 검은색 안에 이미 모든 색이 포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저마다의 빛깔이 있지”라고 말하는 부엉이의 표현처럼, 이 책에서 검은색은 단일한 검정(1도 먹)이 아니라 인쇄에 필요한 4가지 색 요소가 모두 결합된 이른바 ‘4도 먹’이다. 자세히, 정말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자들도 검은색 안에 얼마나 많은 빛깔이 담겼는지 알 수 있다.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그 전에는 알 수 없던 새들의 노래가 들리듯,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어둠 속에서도 잘 보면 그곳에 존재하는 빛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 빛나는 어둠 속에서 독자들은 단순하고도 명징한 삶의 지혜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은 살아 있을 것. 그걸로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