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초월은 단순히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이루며 균형을 유지하는 축으로 작용해야 한다. 현실은 인간의 경험과 감정이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장이며, 초월은 그 경험을 넘어서는 통찰과 깊이를 제공하는 차원이다.
박우지아 시조에서는 이 두 요소가 함께 연대하여 시적 공간을 확장하며, 현실 속에서 초월을 찾고 초월 속에서 현실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다층적인 문학적 깊이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시조가 단순한 묘사나 감정의 표현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해석하는 예술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낮의 등불은 불 밝히지 않아요
오로지 땀으로 땀으로 흙을 갈죠
그 누가 초원의 땅을 아름답다 했나요
수만 번 바람은 흙 속에서 몸살했죠
수만 번 빗물은 쓰라린 아픔 겪죠
비로소 영글은 알은 거친 손에 안겼어요
어둠의 손떨림이 인류를 울리죠
흔들리는 눈동자에 붓끝이 떨고 있죠
세상이 등불이 될 때 알맹이는 우리일까요
-「정직한 삶을 꺼내 주세요」 전문
시인은 「정직한 삶을 꺼내 주세요」를 통해 노동의 현실과 그 속에서의 인간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오로지 땀으로 땀으로 흙을 갈’고 살아가는 현실적이고 정직한 삶의 본질과 그 과정에서 겪는 고통, 그리고 결국 이루어지는 성과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시인은 자연의 이미지를 사용해 정직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고와 인내를 강조하며, 그 과정을 통해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정직한 삶은 굳이 과시할 필요 없이 묵묵히 수행해야 함을 나타낸다. 흙을 가는 행위는 사람들의 꾸준한 노력과 노동을 상징하며, 이 과정에서 땀 흘리는 것이 곧 정직한 삶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자세임을 보여준다.
거칠고 두터운
노역이 쌓여갈 때
비쳐오는 서광은
심장에 터 닦는다
소롯이
멈출 수 없는
소망줄을
심는다
-「소망」 전문
생존과 희망의 밀접한 관계는 시인의 또 다른 「소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거칠고 두터운 노역’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인생의 시련과 고난을 상징한다. 시인은 이러한 고통과 노력은 쌓아가며 살아가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노역은 소망을 이루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시인은 소망의 씨앗 즉 ‘소망줄을 심는다’고 했다. 소망줄을 심는 행위는 그 자체로 꿈을 향한 의지와 결단을 나타내며, 이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희망의 끈을 붙들고 나아가려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을 상징한다.
사과 한 잎 베어 물면 인류사가 들어온다
무풍지에 알이 터져 하얀 속살 매매 다져
쓰라린 세월 품어온 먹거리의 봉우리
따가운 햇살 등에 순풍을 타고 앉아
바람 갈퀴 몸부림에 온몸이 쓰려오니
청제비 노랫소리가 이렇게나 그립다니
매서운 바람살에 단단해져 맛 산다고
부추기는 그 말들이 더욱더 무서웠다
달콤한 과육 안에는 서러움이 걸려있다
-「사과」 전문
「사과」는 이미 과일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경험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사과 한 입’을 베어 물었을 때 들어 온 ‘인류사’는 사과가 인류의 오랜 농경 생활과 생존의 역사를 대변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사과는 에덴 동산 이야기에서부터 현대 농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맥락에서 인류와 깊은 연관을 맺어왔기 때문이다. 사과의 성장 과정과 그 속에 담긴 역사적 무게는 고요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과를 ‘무풍지에 알이 터’져 나와 마침내 ‘하얀 속살’을 키워내는 과정을 전개하고 있다. 이 과정은 인류의 역사가 평온함과 고통, 극복의 시간을 거쳐 발전해 온 과정을 반영한다. 사과는 그러한 인류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으며, ‘먹거리’의 상징적 ‘봉우리’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얼마나 거친 모래가
몸을 파고 들었던가
지루한 태양은
그림자마저 태우지만
알 품은 거북이처럼
저 심해를 건너서
-「달팽이」 전문
인내와 삶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달팽이」에서 ‘거친 모래가 몸을 파고 들었던’ 경험을 통해 시인은 달팽이의 느리고 험난한 여정을 자연과 인간의 삶에 비유하며 그 속에서 발견하는 고통과 성찰, 그리고 희망을 담고 있다. ‘지루한 태양’과 ‘그림자마저 태우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달팽이가 꿋꿋이 전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이 고난과 역경을 마주할 때 계속해서 길을 찾아가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시인은 이러한 변주를 시조 캔버스 위에 오롯이 담아내었다. 특정한 형상을 만들려 하지 않고, 시인의 사유가 흘러가는 대로 물줄기가 모이는 곳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발견했다. 시인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완결된 형태가 아닌 계속해서 변화하고 확장되는 혼재의 흐름과 상통한다. 시인의 작품이 특정한 해석을 요구하지 않고 독자마다 다양한 해석과 감정을 끌어내는 과정이 곧 각자의 삶의 여정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