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화자는 “나는 너무 많은 적막을 지나왔다”는 말로 자신의 현존과 그 현존에 따른 고통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은연중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의식적 사색의 힘이 커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시적 화자도 감지했는지 “문양도 흔적도 지운 상처들이 한 햇살을 받으며/ 하늘의 경계를 지워가는 마지막 물목에 이르렀다.”고 표현하면서 “물방울에 갇힌 하늘이 풀려나가 저마다 바다를 이루는 곳.”이라는 득의의 경지로 나타난다. 작은 세계인 ‘물방울에 갇힌 하늘’은 외적 상황에 의해서든 내적 상황에 의해서든 그 스스로 만든 심연, 즉 마음의 감옥이다. 깨달음은 이러한 질곡의 상태를 깨뜨린다. 시구절에서 ‘풀려나가 저마다 바다를 이루는’ 내용이 바로 이것을 형상화한 것인데, 풀려남은 해방이자 초월이며, 진정한 세계로의 비약이라는 점에서 구원이다. 존재의 본질적 측면에 대한 감득을 통한 진정한 세계로의 감응, 곧 영적 존재로의 비상을 감지하게 되었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실명이라는 병에 의해 발생한 ‘심연’은 이제 더 이상 이상원 시인에게 질곡이 아니다. 존재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깊게 달성하게 만드는 도량이다. 그에 따라 이상원 시인은 “세상의 모든 길이 구부러져 있다는 건 참 다행한 일이다”(「백치의 비망록」)라는 역설적 혜안을 획득하고 있고, 오히려 심연의 적막에 대해 “지나가는 것들 다 지나간 뒤에 다시 낯선 한 평 적막으로 남으리라.”(「노송도」)라고 그 가치를 인정하여 소환하고 있다. 그 놀라운 반전에 접했을 때 문득 드는 생각, 우리 생애에서 심연을 본 사람이야말로 얼마나 될까? 고통의 극심한 바닥을 심연이라 부른다면 그 심연에서 유유하게 살아남고 비상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매우 치열한 정신적 단련을 거친 고귀한 존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상원 시인은 “쉼 없이 교차하는 빛과 어둠의 소용돌이 심연에, 부서지고 또 부서지며 쌓아온 죽음 같은 고요를 보았다.”(「노송도」)라는 말을 언급함으로써 심연을 보았으며, 심연을 만들고, 그 심연에 기거하여 고통과 불안으로 영적 단련을 수행함으로써 혼의 구원을 이루어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비장한 존재의 승리이자 장엄한 혼의 기록이다. 심연에 빠진 외로운 한 영혼이 곤궁함 속에 본질을 깨우쳐 적막한 혼의 비상을 이루니 참으로 복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을 인식의 도약을 통해 깨닫는 자이자 영적 구원을 갈망하는 존재로 본다면, 이상원 시인이야말로 여기에 근본적으로 부합하는 사람이라 할 만하다. 그러기에 더욱더 앞으로의 시작에 시인의 건투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김경복(문학평론가, 경남대 교수)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