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투명한 동급생과 함께
십 대 아이들 사이에서는 사소한 문제도 소문이 되어 퍼지기 마련이다. 학생들은 이 빈자리에 유령이 산다느니, 입원한 동급생이 퇴원했을 때를 위해 마련된 자리라느니, 하는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를 입에 담는다. 미야모토도 "빈자리"의 존재 이유를 궁리하는 학생 중 하나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매일 빈자리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 앉을 법한 사람을 그린다는 것. 방과 후, 아무도 없는 교실에 남아 평소처럼 그림을 그리던 미야모토는 볼일이 생겨 잠깐 자리를 비우게 된다. 그리고 다시 교실로 돌아왔을 때 어떤 소녀와 맞닥뜨리게 된다. 비단처럼 흰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가 그의 그림을 보며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소녀는 미야모토의 존재를 눈치채고 도망치듯이 교실을 떠난다.
나, 네 그림이 좋아. 투명한 동급생이. _본문 속에서
미야모토는 자신의 자리에 올려진 쪽지를 보며 이 ‘빈자리’에 드디어 의미가 생겼다고 믿는다. 소녀의 이름은 미나세. 두 사람은 다음날 교실에서 동급생으로 마주하게 되지만, 미나세의 머리색은 어제와 달리 새까맣게 변해 있다. 이들은 천천히 가까워지며 하굣길에도 함께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미야모토는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고야 마는데.
역귀인 소년과 불행한 소녀
소중한 이를 잃은 우리가 바라는 건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 미야모토는 미나세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병원으로 향한다.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어떻게 병원에 도착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소중한 친구가 위험한 상황에 놓였으니 당연히 두려울 수밖에 없지만, 미야모토가 느끼는 공포의 제일 밑바닥에 있는 건 ‘어쩌면 나 때문에 불행해진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미야모토는 십 대 청소년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살고 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역귀’라고 부르며 그를 따돌린다. 미야모토와 어울리는 사람은 모두 불행해지므로 역귀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는 동네 사람들에게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멸칭을 부정하지 않는다. 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건 전부 자기 탓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죽음, 사라진 아버지, 그리고 제 곁을 떠난 동생. 이 모든 게 우연일 리 없다는 강력한 믿음이 미야모토를 고립시켰다. 그리하여 아무도 없는 교실에 홀로 교실에 남아 그림을 그리며, 자발적으로 타인을 멀리하게 된 이가 바로 미야모토다.
“하지만 미리 얘기해 둘게. 나랑 같이 있으면 불행해져. 나는 역귀니까.”
“그것참 무섭네. 하지만 나도 꽤 불행하거든. 여기서 더 불행해질 수 있을까?” _본문 속에서
그러니 미야모토는 미나세와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다. 그날 보았던 덧없는 미나세의 모습이 자꾸 마음을 괴롭히더라도, 평범한 하루를 보내다가 문득 미나세의 미소가 떠오르더라도. 하지만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쉽게 꺾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미야모토는 미나세와 더 가까워지기 전에 그녀에게 말한다. 자신은 역귀이고, 자신과 가까워지면 불행해질 거라고.
그런 미야모토를 보며 미나세는 태연하게 대꾸한다. 자신은 이미 불행의 한가운데에 있으므로 너와 함께 지낸다고 특별히 더 괴로워질 리는 없다고. 이 말이 두 사람을 붙든다.
“그날의 내 유일한 소원은 지금 여기서 이뤄졌다.”
행복했던 시간을 되찾는 것과
행복할 미래의 시간을 잃지 않는 것
미야모토는 미나세를 잃고 싶지 않다. 그건 아마 미나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야모토는 미나세의 ‘불행’과 비밀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의식을 차린 미나세에게 언제부터 병세가 있었는지 물으며 그녀와 함께 보냈던 시간을 하나씩 되짚어 본다. 한때 미야모토에게 ‘투명한 동급생’이었던 미나세, 처음 보았을 때 머리카락의 색깔이 희었던 미나세, 어째서인지 그림을 그릴 때면 독특한 색감을 발휘하던 미나세. 퍼즐이 하나씩 맞춰질 때마다 미나세가 앓는 병의 실체가 드러난다.
“모토미야는 살아 있다는 것이 뭐라고 생각해?”
유에가 쓴 첫 문장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살아 있다는 것… 이라.”
“나는 누군가가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해.” _본문 속에서
점점 색을 잃어가는 병에 걸린 미나세는 진정으로 ‘투명한 동급생’이 될 위기에 놓였다. 비극적인 결말을 막기 위해 분투하던 미야모토는, 이 여정의 끝에서 마침내 자신의 바람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더 오래 곁에 있으면서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이 세상이 이렇게나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 _본문 속에서
미야모토는 자신에게 찾아올지도 모르는 ‘행복한 미래의 시간’을 잃고 싶지 않았고, 그건 미나세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 그 미래의 시간이란 함께 살아가는 시간을 의미했다.
『보름달이 뜬 밤에 너를 찾다』는 스스로 외면했던 진실한 속마음을 알아채도록 도와주는 작품이다. 자신에게 찾아올지도 모르는 ‘행복한 미래의 시간’을 잃고 싶지 않다는 것, 그것은 ‘과거’에 멈춰 서지 않고 ‘현재’와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첫 발걸음이 될 테다. 타인과 가까워지기를 망설이는 이에게 권하고 싶은, 후유노 요조라만의 특별한 로맨스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