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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매 선생은 충청남도 예산 출생이다. 이화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대만에 유학하여 국립대만사범대학교 중문학 석사과정과 대만문화대학교 일문학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중문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겸임교수다. 동양고전문학자인 선생은 그동안 『고사성어 문화답사기』(2권), 『중국의 성문화』(2권), 『중국통사』(4권), 『중국인쇄사』(5권), 『중국역사박물관』(10권), 『백록원』(5권) 등 50여 권의 저서 및 역서를 출간했다.
선생은 이미 월간 《책과인생》에 필명으로 시를 발표해 등단한 거나 마찬가지임에도 계간 《인간과문학》 2024년 겨울호를 통해 한 번 더 등단이라는 절차를 다졌다. 배우자와 사별 후 슬픔의 늪에서 시를 붙잡은 그는 등단 소감에서 “무엇인가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닥치는 대로 읽었고, 그중 시가 가장 많은 위로를 주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오랜 기간 고전학문을 통해 문장의 원리를 터득하고 있는 선생은 사별로 인한 남편 부재 기간 동안 시 쓰기를 통해 심리적 위로를 받으면서 시집 한 권 분량의 시를 썼다. 그가 토해낸 서정적 충동은 시집 한 권 분량인 70편이나 된다. 그 가운데 직간접으로 남편이 등장하는 시편이 40여 편으로 과반이 넘는다. 모두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 슬픔이 묻어나는 사부곡들이다.
(2)
부부는 서로 최상의 벗이다. 부부의 인연을 불교에서는 7천 겁 인연이라고 한다. 1겁은 천 년에 한 방울 떨어지는 물방울로 바위에 구멍을 내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백 년에 한 번씩 내려온 선녀의 치맛자락에 바위가 닳아 사라지는 시간이다. 그러니 부부로 만난다는 것은 기적이거나 운명이다. 부부인연을 기적이나 운명이 아니고는 설명하기가 불가하다.
강영매 시집의 대부분 시편들은 부부가 되기로 마음먹은 사연과 부부로서 재미있게 보낸 시간, 사별과 사별 후 애도와 슬픔을 진술하고 있다. 그 가운데 시 「쑥잎 몇 장 뜯었소」는 두 사람이 어떻게 부부가 되었는지, 그 처음 인연을 진술하고 있다. 부부의 서사가 시작되는 과정을 간명하고 쉽게 표현한 가작이다.
늦봄 이른 아침 전화
힘없는 목소리
“된장국에 넣을 게 없어
정원에서 쑥잎 몇 장 뜯었소”
측은지심
강물처럼 흘러 흘러
앞으로 거센 파도 모른척하고
당신과의 동행을 결심했었지
- 「쑥잎 몇장 뜯었소」 전문
상대 인물이 된장에 넣을 쑥을 뜯고, 이에 측은지심이 든 화자가 부부의 동행을 결심했다는 내용이다. 힘없는 목소리와 정원의 쑥잎 몇 장이 가져다주는 적은 질량감이 화자의 측은지심을 일으켜 부부가 된 것이다. 부부로서 겪어야 할 “앞으로 거센 파도”는 미래의 일이다. 부부가 된 이들은 부부 동행의 시간 속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남편은 화자에게 “유일한 어머니 유품이라고”(「실반지」) 실반지를 조심스럽게 건네주기도 하고, 봄비가 그치면 “죽순을 꺾어 와/ 함께 껍질을 벗겨 삶아/ 냉동실에 갈무리하며 즐거워”(「죽순」)한다. “봄에는 대숲에서 시화전 열고/ 가을에는 사진전 열기로”(범우죽림원) 낭만이 가득한 약속을 하고, 영화의 “주인공처럼 정원을 가꾸”(「만화원」)며 ‘만화원’이라는 현판 글씨까지 부탁해 놓기도 한다.
평생 본 영화보다
요 몇 년 당신과 본 영화가 훨씬 많다고
행복해 하던 당신
아내 차를 타고
아내 학교에 와서
영화를 보고 저녁 먹고
돌아가는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던 당신
-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부분
부부는 2백여 편의 영화를 본다. 부부가 영화를 보면서 함께 보낸 행복했던 시간을 진술하고 있다. 부부는 자신들이 본 영화 공간과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영화 속의 풍경들과 같은 정원생활을 꿈꿨다. 그리고 시 「만화원」의 내용처럼 꽃으로 어우러진 정원 만들기를 실천했다.
두 사람의 예술 감각과 정서의 공유지인 영화를 통해 부부애는 무르익는다.
부부의 삶은 영화의 서사와 다르지 않다. “우리 이야기가 영화고/ 영화가 우리 이야기”였다. 부부생활 도중 화자가 푸념을 할 때면 남편은 “7090 때는 함께 책도 쓰고/ 월드컵경기장 빌려/ 한바탕 잔치합시다”(「7090」)며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생명은 영원할 수 없다. 모든 생물은 시든다. 호기를 부리던 남편이 노환에 이르자 “운동하러/ 서오릉에”(「호숩다」) 가서 휠체어를 태워준다. 휠체어를 탈 때 “어린애처럼 좋아하던 남편”은 7090의 약속을 저버리고 89세에 저 세상으로 갔다. 그리고 화자는 70살을 혼자 맞이했다.
백중 날
무더위 속 불화로 앞에서
스님은 옷을 태우고
나는 스님 뒤에 서서
불길을 바라보았다
곱게 곱게 싼 한지는 불쏘시개가 되고
그 안에 넣은 편지가 태워지고
양말 속옷 바지와 셔츠가 차례로 불에 탔다
불길은 연통을 따라 양 갈래로 나뉘어
연기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훨훨훨 타는 불길처럼
훨훨훨 자유롭게 하늘로 가시길 빌었다
마음이 좀 가벼워졌느냐는 스님 말씀
나는 옅은 미소로 답했다
오늘은 처음으로 혼자 맞이한
결혼기념일
- 「원각사에서」 전문
생전에 부부가 다닌 것으로 보이는 사찰에서 스님의 주관으로 거행되는 소의식 광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화자는 사별 후 처음 혼자 맞이하는 백중날에 소의식을 지낸다. 마침 고인과 결혼한 날이기도 하다.
소의식은 고인의 옷을 태우는 의식이다. 소의식은 무당이나 스님이 거행하는 의식이다. 사십구재나 천도재와 별개로 망자의 옷을 태우며 영혼이 천국이나 천상의 좋은 곳에 왕생하기를 바라며 지내는 의식이다. 중생을 선처로 이끌기 위한 불교의식이다. ( — 후 략 — ) — 시인 공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