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순금 시인의 디카시 세계는, 그가 몸담고 사는 고성의 풍광을 닮아 맑고 푸르다. 밝은 햇살 아래 청명하게 빛나는 자연과 인물을 대상으로, 순정한 마음의 동요와 깊이 있는 인식을 함께 시에 수용했다. 각 부의 주제로 언명(言明)한 바와 같이 향토의 서정을 담은 시와 생각, 친인의 그림자와 숨결의 포착, 자연 친화의 사유와 맑은 풍광, 일상적인 삶 속의 비범한 관점, 세상살이 이치와 세월의 풍화 등의 제목은 이 시집이 표현하고 지향하는 바를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제 이 시집을 통하여 하나의 ‘마디’를 넘어서는 그의 시 세계가 더욱 확장되고 또 심화되어,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좋은 디카시를 만날 수 있게 해 주기를 기대한다.
- 김종회 (문학평론가·한국디카시인협회 회장)
[해설]
일상의 시각을 넘어서는 풍경의 언어
- 백순금의 디카시
김종회(문학평론가·한국디카시인협회 회장)
1. 향토의 서정을 담은 시와 생각
백순금은 공룡축제의 고장이자 디카시의 발원지로 일컬어지는 경남 고성에서 시를 쓰고 문단 활동을 하는 문인이다. 고성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지역의 대소 문학 모임에 참여하면서, 근래에는 디카시에 크게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 새로 묶어 내는 이 디카시집을 일별해 보면, 그 관심이 만만찮은 의지와 실력을 함께 갖추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의 디카시는 주변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에 자연스럽게 디지털카메라의 렌즈를 가져가며, 그런 만큼 다양하고 폭넓은 작품활동의 영역을 보여준다. 이 시집에 수록된 1부에서 5부까지의 시들은 중심 주제에 따라 각기의 단락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사진과 시가 합일하여 좋은 디카시의 면모를 여러 유형으로 보여준다.
1부 〈초대합니다〉의 시들은 백순금 시인이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고성 지역의 소중한 경관을 시의 영상으로 포착한 것이다. 신월리 해안로 산책길에서 연이은 5개 러브 표시 모형을 두고 「해피데이」를 썼다. 시인은 이 조형물에서 소꿉친구들의 웃음을 유추했다. 「대가족」에서는 뒤란 한 편의 정겨운 장독대를 보여주고, 그 규모에 비추어 온 가족의 모습을 암시적으로 그렸다. 언제 어디서나 등장할 수 있는 우리 옛 삶터 한 폭이다. 그런가 하면 학동 돌담길의 정갈하고 고즈넉한 길목에서 「학동 돌담길」을 쓰고 그 분위기만큼 ‘최 씨 선비’의 기침 소리를 듣고 있다.
남산로 47번길
꽃들의 무도회장
무료티켓으로 오세요
초록이 먼저와 기다립니다
- 「초대합니다」
「초대합니다」라는 시다. 고성 남산공원에 있는 꽃나무 터널이다. 아치형의 구조물을 타고 펼쳐진 길의 점령군은 능소화인 것 같다. 여름철 정원을 화사하게 밝혀주는 하화(夏花) 능소화는 주택가 골목이나 도심의 공원 그리고 도로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어서 ‘양반꽃’이라는 별칭도 있었다. 장원급제한 사람의 모자에 꽂아주던 어사화가 능소화였다. 시인은 그 능소화를 남산로 47번길에서 만났는데, 긴 터널의 행로를 따라 꽃이 핀 광경을 보고 ‘꽃들의 무도회장’이라 불렀다. 이 길 따라 ‘무료티켓’으로 오라는 것이다. 초록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느 누구나 이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무도회의 손님이 될 수 있다는 권유다.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내는 사람들
엎드린 몸으로 길이 되어준 어깨들
- 「동행」
인용된 시는 상리 연꽃공원에서 연꽃의 텃밭인 담수호에 두 줄로 길을 낸 징검다리를 보고 있다. 시인은 이렇게 평행선으로 멀리 진출해 있는 물길의 다리에서 「동행」이란 시를 얻었다. 불가(佛家)에서는 함께 도를 닦는 벗을 일컬어 도반(道伴)이란 어휘를 쓴다. 이제는 이 말이 일반화되어 좀 더 넓은 의미로 어떤 공통의 관심사에 함께 시간과 노력을 쏟는 친구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사진의 강조점은 바로 그와 같은 길벗의 분위기를 환기하는데 충분하다. 더욱이 여기에 덧붙인 시가 일품이다.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내는 사람들’을 넘어 ‘엎드린 몸으로 길이 되어준 어깨들’이라고 진술한다. 새로운 길의 조성, 그를 위한 자기희생의 정신으로 시와 사진이 함께 빛난다.
2. 친인의 그림자와 숨결의 포착
이 시집의 2부〈마중〉의 시들은 시인의 가족과 친인들에 대한 애틋함, 그리고 이를 상기할 수 있는 사진과 시로 구성되어 있다. 가족은 혈연, 인연, 입양으로 연결된 일정한 범위의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가족학 용어는 우리에게 별반 감동이 없다. 말하지 않고서도 아는 것, 눈길 한 번의 교감으로 모든 일이 석연해지는 것이 가족적 삶의 행태(行態)다. 현관을 빼곡하게 채운 신발들을 보여주는 「마중」에서는, 그 삶의 자연스러운 뒤태를 부연 설명 없이도 쉽게 감각 할 수 있다. 만개한 자목련 한 그루를 눈앞에 둔 「어머니 얼굴」에서는, 그 꽃 빛이 어머니의 자주색 비로드 한복으로 보인다. 이처럼 무언(無言)의 인식으로 더 선명한 것이 가족의 그림자다.
어디에 있어도
활짝 피는 너
온몸이 꽃이다
- 「꽃밭」
순진무구한 아이의 얼굴 표정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일찍이 윌리엄 워즈워스는 그의 시 「무지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란 매우 과감한 언표(言表)를 사용한 바 있다. 「꽃밭」이라는 제목이 부여된 이 시는, 집 앞 자연석으로 구획을 지은 꽃밭 앞에서 어린아이가 킥보드에 한 발을 올려놓은 채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을 붙들었다. 어쩌면 시인의 손녀인지도 모른다. 꽃밭에는 금계국 노란꽃이 무리 지어 피어있고, 사진의 풍정(風情)은 고요하다. 시인은 아이를 두고 ‘어디에 있어도 활짝 피는 너’라고 호명하고 ‘온몸이 꽃’이라고 선언한다. 우리가 아무런 저항감 없이 이 선언식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은, 아이 때문이기도 하고 시인 때문이기도 하다.
누가 제일 예쁜 옷을 입었는지
맵시를 뽐내는 중이다
점수 좀 매겨주세요
- 「외출 준비」
「외출 준비」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 사진은 갖가지 나물 반찬과 김치로 한 상 가득 깔끔한 차림을 준비했다. 반찬이 담긴 그릇들로 미루어 짐작하자면, 곧바로 외출을 감행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가족을 위한 것인지 손님을 위한 것인지 알 방도는 없다. 잘 모르긴 해도 음식의 깊은 맛이란 산해진미의 바탕을 이루는 푸성귀에서 출발한다고 들었다. 이 나물들의 외양에는 그 나름의 표정이 있다. 그러기에 시인은 ‘누가 제일 예쁜 옷을 입었는지’를 살펴보고 점수를 매겨달라고 부탁한다. 맛을 최후의 가치로 하는 음식을 두고 눈대중으로 우위를 판별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거기에는 시식(試食)하는 이 저마다의 취향이 따로 있다. 그러므로 거기까지다. 이 시는 눈맛에서 입맛으로 가기 전까지의 공간을 점유하면서 제 몫을 다한다.
3. 자연 친화의 사유와 밝은 풍광
디카시는 세상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으로부터 소재를 얻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빈도를 보이는 대상은 자연의 경물이다. 그러므로 자연 친화의 사유와 사상이 없으면, 디카시인으로서는 그 활동 범주가 협소해지기 쉽다. 일찍이 『논어』 〈양화편〉에서 시가‘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鳥獸草木之名)’을 많이 알게 해 준다고 한 것이 이와 다르지 않다. 이 시집의 3부 〈앵콜 공연〉은 이러한 사상의 시화(詩化)를 도모했다. 이 시인은 둥근 대형 화륜(花輪)의 국화꽃에서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시를 얻고, 작은 마음을 보태어 둥근 세상이 된다고 했다. 논밭을 가득 채운 코스모스 꽃밭에서 「무대복」이란 시를 얻고, 엄마가 만들어준 제일 값진 ‘다후다 꽃치마’라고 했다. 관찰의 방향에 따라, 이렇게 자연은 천의 얼굴을 펼쳐 보인다.
좀처럼 표정 없는너도
내가 간지럼 태우니
지금 웃고 있잖아
- 「웃어봐」
「웃어봐」라는 제목을 얻은 이 시는 창파(滄波)가 시원한 바다의 뱃길을 소재로 했다. 아마도 배의 후미에서 물살이 길을 낸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굳이 이 시를 주목하게 된 연유는, 사진도 사진이지만 그에 덧붙인 세 줄의 수발(秀拔)한 시어 때문이다. ‘좀처럼 표정이 없는 너’는 평상시의 잔잔한 바다를 말한다. 그런데 내가 태우는 간지럼은, 단순히 물길의 반응을 염두에 두는 데 그치지 않고 화자가 바다에 투영하는 의미의 소통에 그 방점이 있다. 지금 이 화자는 사뭇 색다른 손짓으로 바다와 대화하고 있고, 바다는 그 심정적 접촉에 반응하여 웃음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과 자연의 대화가 어느 수준으로 가능한지를 가늠하는 하나의 시금석(試金石)이 될 수 있다.
다시는 오지 않을것처럼
나를 불태우는 시간
오늘 하루 잘 살았다
- 「엄지척」
이 시 「엄지척」은 유달리 감성적이며 감각적인 작품이다. 때는 하루의 모든 일과를 마치고 휴식에 들 시간, 하늘의 태양 또한 하루의 작열(灼熱)을 모두 마치고 서산마루를 넘어가는 일모와 석양의 시간이다. 아직 포구로 돌아오지 못한 작은 어선 한 척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가운데, 산머리에 걸린 태양이 긴 그림자를 바다에 드리워 황금색 빛기둥이 선연하다. 어쩌면 이 모양이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운 듯도 싶다. 시인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나를 불태우는 시간’이라고 썼다. 연이어 ‘오늘 하루’ 잘 살았다고 첨언했다. 태양과 그 태양을 바라보며 하루를 지낸 시인과 독자에게 함께 통용되는 인사말이다.
4. 일상적인 삶 속의 비범한 관점
조촐하고 소박한 우리의 일상은, 그러나 그 어떤 위명(偉名)을 가진 것보다 귀하고 때로는 비교나 교환을 거절한다. 그러기에 『논어』 〈자한편〉에는 삼군의 장수를 빼앗을 수 있으나 필부(匹夫)의 한 번 품은 뜻을 빼앗을 수 없다는 구절이 있다. 이 서민 의식의 정신은 디카시가 가진 창작의 운명적 방향성과 그 궤(軌)를 같이 한다. 디카시는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시적 대상으로부터 깊고 진진(津津)한 의미의 소출을 걷어 올리는 문예형식이다. 그리하여 일상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일상이 되는 시의 형식이다. 이 시집의 4부 〈빌딩 숲〉은 그 일상의 가치를 잘 살려낸 작품들이다. 「관심」은 전주의 위아래 불빛에서 이웃을 규정한다. 「내 컴퓨터」는 사찰의 사방팔방 연등에서 온갖 자료 파일을 연상한다. 이렇게 일상에서 예술을 찾아내는 촉수가 곧 시인의 눈이다.
고층아파트가 밀집한 도시
알파벳 이름만 수두룩한 빌딩 앞에서
어렵사리 집을 찾는다
- 「빌딩 숲」
이 시 「빌딩 숲」은 한껏 이채로운 작품이다. 꽃밭을 가득 채운 외래종 루피너스의 무리 꽃이 풍성하기 이를 데 없다. 이 꽃은 밭의 흙을 풍요롭게 한다는 속설이 있다. 색감 또한 형형색색이고 모양은 헌앙하다. 오죽하면 시인이 이 꽃의 군집을 빌딩 숲이라 불렀을까 싶다. 꽃밭에서 고층아파트가 밀집한 도시의 이미지를 불러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다 시인은, 이 꽃의 외관에 알파벳 이름이 수두룩하다는 결론을 부가했다. 이렇게 상상력이 도약하는 현상을 일러, 일상적인 삶 속에서 비범한 관점을 발굴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순간 포착과 촌철살인의 창작 방향성을 궁구(窮究)하는 디카시의 특성을 잘 살린 작품이다.
잘 익은 시간들이
모퉁이를 돌아간다
자꾸만 길어지는 그림자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 「인생」
인용된 시 「인생」은 낙엽이 지는 조각(凋落)의 계절을 수용하여, 인생의 사양길에 대한 하나의 정의(定義)를 시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단풍으로 물든 잎새가 거의 떨어져 반듯한 소로 한쪽으로 모여 있고, 길은 저 멀리 길게 이어져 앞으로 가야 할 여정을 상징하고 있으며, 길의 앞쪽 끝에 몇 사람의 실루엣이 아련히 보이고 있다. 시인이 여기에 굳이 인생이란 제목을 부가한 것은, 이 늦가을의 풍경과 하산 길 우리 삶의 모습이 많이 닮아 있는 까닭에서다. 시인은 ‘잘 익은 시간들’이 모퉁이를 돌아간다고 보고, 더불어 ‘자꾸만 길어지는 그림자’를 관찰한다. 그가 혼자가 아니었다고 할 때의 ‘그’는, 우리 각자이며 공동체이며 결국은 인생 전체가 될 것이다.
5. 세상살이 이치와 세월의 풍화
우리가 사는 한평생에 온갖 희로애락이 함께 있는 터이지만, 그 가운데서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차오르는 고운 감정이 그리움이다. 이 시집에서 5부 〈목마른 안부〉는, 그 그리움의 여러 형상을 렌즈로 포착하고 그에 합당한 시어를 연대한 작품들이다. 이 그리움은 하루 이틀 사이에 형성된 급속 성장이 아니다. 오랜 세월의 인내와 자기성찰이 함께하는 터이기에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목마른 안부」에서는 어느 시골 마을의 글자와 그림 조형으로 어머니를 그렸다. 「유품」에서는 어머니의 반짇고리에서 그 향취를 찾았다. 「따뜻한 그늘」은 출입문 앞의 초본 한 그루에서 자식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었다. 백순금의 시에서는 이 모든 사물이 세월의 풍화작용을 견디며 세상 사는 이치를 보여준다.
혈육으로 자식을 길러내신
아버지의 발등에 햇살이 내립니다
골골이 패인 핏줄에
허물어진 발톱만 남았습니다
- 「요양병원」
고목의 밑동과 땅으로 이어지는 뿌리 부분을 사진에 담고 「요양병원」이란 시를 썼다. 세로로 날이 선 나뭇결의 외피가 얼마나 오래 춘풍추우(春風秋雨)의 풍상을 견뎌왔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도 사진에 실린 나무의 표정은 굳건하게 정돈되어 보인다. 한 생애의 책임을 다하고 남아 있는 날에 그간의 지조를 지키겠다고 공표하는 듯하다. 시인은 이를 두고, 혈육을 길러낸 ‘아버지의 발등’으로 보았다. 아주 탁월한 시어의 선택이다. 굴곡이 진 나뭇결을 ‘골골이 패인 핏줄’로 보고, 그 끝부분을 ‘허물어진 발톱’으로 보는 시각 또한 참신하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사진과 시로 형상화하는 데 있어 참으로 마땅한 대상이요 제재(題材)다.
칠 대 종손
근근이 얻은 핏줄
굵게 여물다
- 「씨받이」
여름철 농촌의 맥고모자처럼 흔한 수박을 하필이면 시멘트 바닥에서 목격하고 「씨받이」란 시를 썼다. 이 제목이 함축하는 비극적인 삶의 사례는 너무도 많으나, 저 작은 수박 한 통을 얻기 위해 그 용어를 빌려 온 것은 미상불 어쩔 수 없는 절박함을 느끼게 한다. 벽과 바닥의 틈서리를 헤치고 이 식물은 줄기를 내고 잎을 키웠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그 끝자락에 수박 열매 하나를 매달았다. 시인은 여기서 몇 걸음 더 나간다. ‘칠 대종손’의 근근이 얻은 핏줄이라는 것이다. 그 어려운 가정적 또는 유전적 환경을 딛고 자식을 얻은 것처럼, 황무한 자리에서 영근 수박 하나가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자연과 가족사가 함께 입을 열어 말하는 인생유전(人生流轉)의 한 장면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공들여 살펴본 백순금 시인의 디카시 세계는, 그가 몸담고 사는 고성의 풍광을 닮아 맑고 푸르다. 밝은 햇살 아래 청명하게 빛나는 자연과 인물을 대상으로, 순정한 마음의 동요와 깊이 있는 인식을 함께 시에 수용했다. 각 부의 주제로 언명(言明)한 바와 같이 향토의 서정을 담은 시와 생각, 친인의 그림자와 숨결의 포착, 자연 친화의 사유와 맑은 풍광, 일상적인 삶 속의 비범한 관점, 세상살이 이치와 세월의 풍화 등의 제목은 이 시집이 표현하고 지향하는 바를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제 이 시집을 통하여 하나의 ‘마디’를 넘어서는 그의 시 세계가 더욱 확장되고 또 심화되어,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좋은 디카시를 만날 수 있게 해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