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은 긴 잠으로부터 시작된다. 인생의 절반은 잠으로 일관한다는 말이 낭설이 아니다. 사람이면 행하는 일상이다. 낮과 밤을 상관치 않고 빠져드는 게 잠이다. 아련한 잠에 도취되어 반송장이 된 무아지경 속에서도 사람은 꿈을 꾼다. 젖먹이 어린아이의 잠든 얼굴을 들여다본 모든 어머니들은 하나같이 잠든 아이가 잠결에 방실대며 웃는 모습을 목격했으리라. 젖먹이조차도 꿈을 꾼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꾸는 꿈은 단순하다. 모태에서 세상 밖을 내다볼 수 없어 아무것도 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성장 과정의 꿈일 뿐이라 이르고, 그 꿈은 아름다운 개꿈이라고 일축해도 좋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린 것이 몸으로 말하는 무언의 성장통임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세상에 나 같은 아이가 또 있을까 싶게 내 성장의 기간은 꿈을 꾸기 위해 태어난 특별한 혼돈의 아이 같았다. 성인이 되어 머리 허연 지금의 이 나이에도 꿈은 계속된다. 산꼭대기에서 두 팔을 벌려 하늘을 자유자재로 유영하는 환상적 허울이 묻어나는 단맥상의 꿈을 꾼다. 하늘을 나는 꿈은 성장기 때만 꿀 수 있는 꿈이다.
알라딘의 요술 담요처럼 창공을 휘저어 날았고, 묘기를 부리는 비행으로 협곡을 비집고 날았다. 이 같잖고 두려움 없는 꿈은 주책일까? 몽상일까? 누구나 잠이 들면 크고 작은 꿈을 꾼다. 꿈은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일 수도 있고, 단지 몽상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불가능한 꿈과 희망을 신념으로 희망을 갖는 사람을 몽상가라 이르지만 그들에겐 무언가 구미 당기는 자기 위주의 꿈에 대한 선입견에 사활을 거는 걸 보면 꿈을 굳이 의기소침해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현실에서 강렬하게 바라던 희망이 꿈에서 실현되는 거꾸로의 현실처럼 와닿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는 이면도 있다. 이는 절대 신뢰할 수 없는 감성적인 로망이 너무 깊은 나머지 꿈이 불러내는 투명적 환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꿈을 허투루 간구치 않고 소중히 다뤄 자기 안일의 흑백을 가리는 신 같은 존재로 꿈을 다루기도 하며, 꿈에 따라 그날의 일진을 점치고 일확천금을 꿈꾸며 복권도 사고, 돼지꿈, 똥꿈에 길흉화복의 운세를 소원하기도 한다. 꿈의 기억은 하루가 생명이다. 짧게도 하루, 길면 이삼 일이면 잊혀지는 것이 꿈의 특징이다.
우리는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다. 꿈은 신으로부터 혹은 영혼으로부터 자신에게 오는 영혼의 메시지일 거라 생각된다. 나는 철학가이거나 역술인 또는 심령가가 아니다. 일반대중으로서 그럴 것이라는 혼자만의 생각을 두서없이 표현할 뿐 믿고, 안 믿고는 독자의 몫이다. 꿈속의 사위는 언제나 신비로 가득하다. 나 아닌 타인과의 어울림에서 나를 꼭 신뢰받는 인물로 승화시킨다. 꿈의 해몽은 믿을 만큼 제대로 해야 꿈 가치의 소중함에서 비롯된 값진 꿈값을 할 것인즉 좋은 꿈은 신처럼 소중히 다루어 나만이 간직한 그날 운세의 보물로 간직할 일이다. 이것을 행운의 꿈이라 이름한다. 좋은 꿈은 혼자 마음속에 숨겨 남에게 발설치 않는 꿈 나름의 원칙이 있다. 용꿈, 돼지꿈, 돈꿈을 꾼 사람들의 공통된 심리다.
꿈은 크게 나누어 다섯 가지 종류로 따져 분리한다고 한다. 첫 번째 심몽(心蒙)이다. 평소 깊게 생각해 반복해서 꾸어지는 꿈을 말한다. 정몽(正夢), 평생에 볼일도 없고 느끼거나 생각조차 해본 일도 없는데 꿈에 또렷이 나타나 깨어나서도 꿈의 전후 현상이 두드러져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경우를 말한다. 허몽(虛夢), 심신이 나태하거나 쇠잔할 때 꾸어지는 기분 나쁜 꿈으로 몸이 허약한 이들이 꾸는 꿈을 말한다. 잡몽(雜夢), 꿈과 욕망이 두드러진 이들이 꾸는 꿈으로 별 의미가 없는 자신의 노이제로가 불러오는 심신 고단한 꿈이다. 영몽(靈夢), 신화적이며 영적인 꿈이다. 일대 선조가 꿈에 나타나 경고하는 중대 의미를 갖는 꿈으로 일생에 한 번 꿀까 말까 하는 귀하고 신비한 꿈을 말한다.
그대들이여, 꿈을 꾸어라! 정몽, 잡몽, 심몽, 허몽, 영몽보다 값지고 현실에 가까워질 수 있는 생각이 살아있는 절대적 희망의 꿈을 말이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했다. 꿈풀이의 해몽은 하나의 거품이다. 문명의 이기 핸드폰 속 게임이라 일축하며 꿈은 부득이 나만의 존재물이 아닌 누구나 꾸는 돌림병 같은 몽환적 질환임을 상기하고 기대 이상의 편애에서 자유로워질 일이다. 다만 좋은 꿈이라면 의미를 부여할 일이다. 멀리 옛 선조들은 꿈을 조상이나 신의 계시로 받아들인 숭고함이 있었다. 그 편견에 치우쳐 그날 일진에 반영하고 행동 반경마저 자제하며 간밤의 꿈에 촉각을 세워 촌각을 다투는 하루를 살았으니 그 순수함이 곧 우리 백의민족 영혼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꿈은 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