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하고 딱딱한 서평 대신, 독자님께 직접 편지를 써봅니다. 저는 『파란 지붕 할망』의 발행처 독립출판사 발코니의 대표이자, 편집자이자, 디자이너입니다. 홀로 책을 만들어가는 곳이라 이렇게 여러 직군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른 출판사의 멋진 서평들을 어떻게 따라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발코니만의 방식으로 서평을 전합니다.
『파란 지붕 할망』은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1년의 긴 여정 끝에 완성된 책입니다. 저자 오행순 작가님은 어느 여름날, 제주도 청수리 집 근처 카페 ‘이립’을 찾아갔습니다. 이립을 운영하는 사람이 에세이 작가 김버금 작가님이라는 사실을 들었거든요. 할머니는 김버금 작가님께 부탁합니다. 자신의 글과 그림을 책으로 만들어줄 사람을 찾아달라고요.
하지만 에세이 작가라고 해서 책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김버금 작가님은 출판으로 먹고 사는 친구, 그러니까 독립출판사 발코니 대표인 저에게 연락합니다. 그렇게 저는 제주도를 향했고, 오행순 할머니의 양장 다이어리 뭉치부터 스케치북 더미 등을 받아 안은 채 육지로 돌아왔습니다.
솔직하게 말씀을 드려볼까요? 원래는 ‘한 어르신의 기념집’ 정도로만 만들고 선물해드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글을 두어 시간 동안 완독한 후 곧바로 김버금 작가님께 전화했습니다. 발코니에서 정식으로 출간할 수 있도록, 오행순 할머니와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부터 오행순, 김버금, 발코니의 여정은 시작됐습니다. 오행순 할머니가 아닌 오행순 작가님으로 새로운 삶을 경험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저는 1933년 8월 24일에 태어났습니다. 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청수리에서 2남 1녀 중 여자로 태어나게 되어 농사에 종사하시는 아버님, 조용한 미소로 단란한 가정을 위해 가사를 돌보시는 어머님과 함께 지냈습니다.” _15쪽
오행순 작가님의 육필 원고는 시간 순서가 매우 복잡했습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기억들을 작가님께서 붙잡다보니 타임라인이 뒤엉켜 있었습니다. 이걸 다시 잡는 데 오랜 시간을 소요했습니다. 타임라인이 정돈되니 내용이 좀 더 선명해지는 게 보였습니다. 그때부터는 주제와 맥락에 따라 각 글을 서로 섞고 녹이는 편집을 진행했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에도 평화는 잠시뿐. 미처 숨 돌릴 사이도 없이 4·3사건이 일어났습니다.” _35쪽
오행순 작가님은 이번 『파란 지붕 할망』에 제주4·3사건도 짤막하게 언급했습니다. 작가님의 표현에 따르면 제주4·3사건은 “그쪽도 무섭고 저쪽도 무서웠”던 시기였습니다.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과 더불어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강요가 밀려왔다고 합니다. 지극히 평범히 살던 한 제주도민의 두려움이 오행순 작가님만의 언어로 담겨있습니다.
“인생은 늘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은 평화와 행복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채워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괴로움을 두려워하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희망은 늘 괴로운 언덕 너머에서 기다리니까요.” _45쪽
지긋지긋한 가난, 자신을 멸시하던 시집살이, 여성을 짐승처럼 대하던 시대까지 겨우 견딘 오행순 작가님은 이번 책에서 말합니다. 자신이 왜 삶을 포기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요. 괴로운 언덕 너머에서 기다리는 희망을 바라보며 뚜벅뚜벅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내 깨달은 바를 말합니다.
“그대의 가장 좋은 친구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나야말로 내가 의지할 곳이다. 나를 제쳐놓고 내가 의지할 곳은 없다. 착실한 나의 힘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나의 실패와 몰락을 책망할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나 자신의 최대의 적이며 비참한 운명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또 나의 희망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희망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
결국, 나를 구원할 존재는 오로지 자신뿐이라는 사실에 대해 오행순 작가님은 『파란 지붕 할망』으로 전합니다.
삶의 통찰이 담겨 있는 글에 이어 30여 점의 그림도 이번 『파란 지붕 할망』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행순 작가님은 일상에서 만난 식물과 동물을 굽어보며, 이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완성했습니다. 가끔 그림 속에는 이런 문구도 손글씨로 담았습니다.
“소나무도 참 힘들게 컸네. 이리 꾸불고 저리 꾸불고. 그러고보니 내 인생과 닮았네.” _97쪽
그밖에 오행순 작가님이 이립에서 불특정 타인과 나눴던 편지도 책에 실려있습니다. 일상에 존재하는 복잡한 고민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오행순 작가님만의 문장을 통해, 어쩐지 나의 고민도 해결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이 책은 ‘큰 글자 도서’로 만들었습니다. 본문 활자 크기는 18포인트로 적용하고, 판형은 신국판으로 넉넉하게 제작했습니다. 이 책은 오행순 작가님의 기록 덕분에 탄생했고, 그렇다면 기록의 주인인 오행순 작가님께서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판형과 서체로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작은 글자 읽기가 어려웠던 독자님도 부디 편안하게 볼 수 있길 바랍니다.
출판사 서평이라기엔 어쩐지 이 책 뒷면의 모든 이야기를 전한 것만 같네요. 부디 이 부족한 서평이 독자님 마음에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길 바라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