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은 정말 ‘푸른 피’를 타고나는 것일까?”
고대 그리스ㆍ로마시대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2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켜켜이 쌓여 온
귀족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진실을 낱낱이 풀어본다!
우리는 ‘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귀족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찾으면 다음과 같다. “가문이나 신분 따위가 좋아 정치적·사회적 특권을 가진 계층 또는 그런 사람.” 저자인 임승휘 교수는 이러한 사전적 정의로는 귀족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귀족에 대한 가장 기본 정보는 전할 수 있겠으나, 2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역사에 그들이 어떤 발자취를 남겼는지, 시대의 흐름에 호흡하면서 탄생시킨 사회문화와 생활양식 등을 제대로 담아내지는 못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동안 겉핥기식으로 다루어 왔던 ‘귀족’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한다. ‘챕터 1’에서는 혈통의 신화부터 결투, 기사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거쳐 에티켓과 귀족 가문의 문장에 이르기까지, 독자가 한 번쯤 접해보았을 비교적 익숙한 개념으로 귀족 세계를 설명한다. ‘챕터 2’에서는 귀족의 가족, 결혼, 자녀 교육, 의식주 같은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재구성한다. ‘챕터 3’에서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귀족 중 주목할 만한 인물을 선별, 그들과 얽힌 사건을 통해 귀족의 삶을 반추한다. 마지막 ‘챕터 4’에서는 귀족에 대한 역사학적인 개념 정의, 귀족이 되는 방법과 작위의 구조, 귀족이 하는 일과 귀족들 사이의 고유한 사회적 관계를 정리했다. 귀족에 대한 저자의 체계적인 설명을 통해 귀족의 실제 모습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
| ‘블루 블러드’, ‘기사도’, ‘결투’, ‘노블레스 오블리주’, ‘요새와 성’…
다양한 키워드로 살펴보는 귀족의 역사와 문화
‘귀족’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블루 블러드(푸른 피), 기사도, 목숨을 건 결투, 노블레스 오블리주, 요새화된 으리으리한 성, 가문을 상징하는 다양한 문장 등. 이 키워드들은 마치 귀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귀족은 푸른 피를 타고난다’는 신화는 꽤 오랜 기간 동안 대중에게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저자는 이 ‘푸른 피’ 신화가 이방인과 피가 섞이지 않은 귀족 가문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일종의 표식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 귀족의 ‘푸른 피’와 창백한 피부는 사회적 신분을 구별하는 장치로도 활용되었는데, 전통 사회에서 검게 그을린 피부는 대체로 농사나 밭일 같은 야외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그러므로 창백한 피부는 땡볕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피부가 그을릴 수밖에 없던 농민과 구별되는 귀족의 사회적 표식으로 인식되었다. 푸른 피 신화를 통해 우리는 귀족이 어떻게 일반 대중과 구별되는 삶을 살았는지, 그것이 함의하는 사회적 코드는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귀족’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결투’다. 수많은 영화와 연극, 오페라 등으로 재탄생한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도 유명한 결투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촌인 ‘티볼트’ 간의 결투가 그것이다. 로미오와 티볼트의 가문은 서로 앙숙 사이로, 이들의 결투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문으로서도 명예가 걸린 아주 중차대한 일이다. 그렇다면 왜 귀족들은 ‘결투’라는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했을까? 저자는 결투가 중세 때 재판방식에 하나였다고 설명한다. 즉 분쟁이 일어나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싸워서 이기는 사람이 옳다는 식의 논리를 따라 결투를 벌인 것이다. 이처럼 귀족의 전유물 같던 결투는 이후 귀족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 명맥이 이어졌다.
결투로 분쟁을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싸움에서 이긴 자는 무죄이고 진 자는 유죄가 된다는 점이었다. 9세기 프랑스는 결투 남용을 막기 위해 여러 조치를 실시했으나 실효성이 크지 않았고, 17세기 절대왕정 시기에 이르러 국가의 사법과 행정기구가 강화되면서 조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하지만 결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통치권을 강화하려는 국왕에게 있어 결투는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었다. 반면 귀족에게는 잃어가는 자신들의 권리, 즉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권리와 힘에 대한 향수의 표현이었다.
저자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익숙한 키워드를 통해 ‘귀족의 세계’를 분석하고 설명한다. 귀족은 일반 대중과 구별되는 신화 속 존재가 아니라 실제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대상이었다. 저자는 귀족 또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꾀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고 주장한다. 특권층으로서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를 도모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귀족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그들이 추구했던 삶의 가치와 목표를 이해함으로써 이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