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수 시인의 시(詩)는 다양한 정서로 표현되고 있지만, 피조물을 위한 기도처럼 느껴진다.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마음속에 감사와 사랑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색과 성찰을 통하여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기도 한다. 시집 『영혼의 지문』은 사람 사는 공간의 한복판에 서 있다. 아내에 대한 애틋함은 돌이킬 수 없는 죽음과 허무를 불러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 손을 꼭 잡고 놓지 말고 걷자”고 하던 아내와의 다짐은 한순간 무너지고 늘 곁에 있던 사람의 부재로 겪는 외로움이 단상처럼 그려진다. “아내에게 부치는 편지”는 그리움의 정점에 우뚝 서게 한다. “먹지 못하면 죽으므로 그리움을 먹으러 간다”는 싯구는 아내와 함께 가던 식당과 음식을 떠올리며 아내의 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내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 슬픔이다. 눈물마저도 슬픔을 정화하려는 영혼의 빛으로 읽힌다. 이 시집은 유명을 달리한 아내에게 바치는 애틋한 사랑이 감동적이다.
- 민창홍 (시인·경상남도문인협회 회장)
■후기
2023년 1월 29일 아내의 죽음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건강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죽는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살림밖에 모르고 부지런하고 똑소리 나는 아내의 건강을 지키지 못한 큰 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려고 발버둥 친다는 말입니까. 부도, 권력도, 명예도 죽으면 아무것도 아닌 인생 정말 헛되고 헛되었습니다.
2015년 직장에서 메르스 바이러스 의심 기침하는 후배에게 남편이 감염 의심이 있었고-(기침이 나고 호흡에 이상이 있어 감염 의심으로 보건소, 개인병원, 삼성병원, 전남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이상이 없었으나, 바이러스에 대하여 공부를 해보니 메르스나,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은 인체의 세포핵에서 증식하므로 일반 검사로는 검사가 어렵고 초정밀 검사 및 DNA 검사로서야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감염 진단이 어렵거니와 무증상 감염은 증상이 없다가도 언제 어느 때 갑자기 암으로 가는 무서운 감염병이여 항상 염려를 안고 살아온 것은 인류의 재앙인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3분 1의 목숨을 빼앗아 갔고, 천연두, 폐결핵 같은 전염병이 많은 인류의 목숨을 앗아가듯이 미래의 인류는 바이러스로 멸망한다는 말도 있어 감염에 대한 공포로 강박관념을 안고 지내왔으며)-아내도 기침하다 비염이 오고, 건강검진에서 비활동성 폐결핵이 보였다. 폐 섬유화증 의심을 하다 2023년 코로나 백신 3차 접종 후 기저 질환에 불을 붙었는지 한참 꽃 필 나이에 폐암을 진단받고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아내는 메르스 감염의 기저질환으로 코로나 백신 피해자임이 확실합니다. 나 역시 비염에다 비활동성 결핵균이 있다고 합니다. 단식을 해온 터라 면역력이 있어 좀 늦게 진행되고 있을 뿐입니다. 고명딸도 혈액에 비활동성 결핵균이 보인다고 하니,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는 결핵균으로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나는 생각지도 않은 날에 갑자기 죽을 수 있고 오늘이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최선으로 삽니다. 나는 죄 많은 사람이라 살 만큼 살았지만, 가족이 무슨 죄가 있다는 말입니까?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죄인이 되었습니다. 생업을 하다 감염된 악성 호흡기 바이러스이지만 아내, 딸, 손주에게까지 큰 죄인이 되어 죽어서도 무릎 꿇고 빌어야 하는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바이러스 감염은 아직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바이러스는 인체를 숙주로 세포핵에서 증식하며 머리에까지 올라가기도 하고, 기관지염, 기관지 확장증, 비염을 일으키고,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아무런 증상 없이 5년, 10년, 15년 계속 증식하며 폐를 갉아먹고 침몰시키며 폐렴, 폐 섬유화, 폐암으로 진행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병입니다. 바이러스 감염자는 자기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고 고통 공포 속에서 살게 됩니다. 바이러스 감염은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운반자를 원망하겠습니까. 국민의 보건과 안녕을 책임지고 있는 국가를 원망하겠습니까. 하늘을 원망하겠습니까. 삶은 당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당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이지 국가도 누구도 어쩌지 못합니다.
아내와 저는 폐는 건강한 터라 바이러스 기침을 가벼운 감기처럼 그냥 지나갔다 생각하고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비활동성 폐결핵이 있다고 했을 때도 오진이라고 웃어넘겼습니다. 증상이 없었으니 죽는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혼자 살아갈 자신이 없으니 남편보다 먼저 죽어야 한다. 이만큼 산 것만 해도 오래 살았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래 살았다고 한 말은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만큼 몸이 약해 방황을 일삼는 남편으로 고통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어리석은 나는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아내가 폐암이라 하자 나는 큰 충격으로 가슴이 찢어졌지만, 아내는 죽음 앞에서도 담담했습니다. 존경이란 단어는 이럴 때 쓰는 말이었습니다. 아내를 만지면 육신이 얼마나 숭고한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수녀가 되려 한 아내는 종일 기도하며 신앙밖에 몰랐습니다. 그런 아내가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삶이 아이러니하였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려있는가요? 생각해 보면 아내는 운명을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첫 만남에 16살 건강을 잃고 방황하는 고통을 이야기하자 누구에게나 고통이 있다고 천사와 같이 있는 것처럼 마음 편안하게 해 준 일이며, 건강으로 결혼을 생각하지 못한 사람의 꿈에 나타나 결혼을 할 수 있게 하여 동물의 수령에서 구해준 일이며, 3명의 자녀를 생각한 나에게 한 명이라도 많다고 딸 한 명을 두자고 한 일이며, 귀신같은 직감력으로 나를 놀라게 한 일들, 내가 건강을 잃고 죽어갈 때 단식을 권유하여 살리고, 메르스, 코로나라는 특수한 사항도 있었지만 2017년에 죽음을 준비할 때 살려낸 일이며, 2022년 죽을 정도 힘들 때 백약초로 살아나게 한 일이며 고비마다 살려내고는 아내가 먼저 죽는다고 내 죽으면 어떻게 살아라고 말하던 일 등은 미루어 보면 자신의 삶을 예견이나 하는 듯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삶의 비밀은 내 이승의 삶이 다하고 아내를 찾아가면 알 수 있을까요?
살아가면서 생각한 것은 죽음은 없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나는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과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태어난 목적이 끝나고 하늘이 부르는 날은 정해져 있을 것입니다. 아내가 죽었어도 죽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외로움을 심하게 타던 결혼 전과 달리 항상 아내와 같이 있습니다.
아내가 아끼며 사용하던 싱크대 앞이며 아내의 영혼이 옆에 있는 듯 소름이 돋습니다. 손빨래하면서, 빨래를 널면서, 침대에서 아내의 영혼이 쳐다보고 있는 양 소름 돋을 때가 많습니다. 아내 수목장지에 가면 소름이 돋는 기를 느낍니다. 혼자 생활하는 게 아니라 안방에 아내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부엌에 아내가 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 것일까요? 우리의 본원은 우주의 에너지 빛이라 생각합니다. 아내의 형체는 없지만, 에너지는 내 안에 들어와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올랐어도 아내와 나는 우주의 기운으로 함께하지 않을까요? 내 생각과 움직임 모두 타고난 우주의 기운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지 않을까요? 이 시간에 주위에서 만나는 사람, 사물이나 물질, 모든 것은 미리 우주 에너지의 흐름으로 운명 지어진 시간의 지도에 따라 만나는 것이 아닐까요. 인도에는 모기까지 신이 있다고 보는 것은 우주 에너지가 기이고, 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양신이나 자연 숭배, 힌두교, 불교, 가톨릭, 기독교가 말하는 창조주 근원은 나를 만든 우주 에너지이지 않을까요? 우리는 우주 에너지가 만든 조각품이며 죽으면 태어나기 전 우주의 에너지로 돌아가지 않을까요?
모든 시간대에 일어나는 사건과 만나는 사람들 우연히 있을 수 있을까요? 불교에 옷깃이 스쳐도 일천 겁의 인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겁이 43억 4천만 년이라 우주의 시간대로 나를 탄생시킨 근원의 에너지로 인연으로 내려왔다는 말이 아닐까요? 지금 직장에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 중증 장애인 친구들, 자주 만나는 친구들,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 어떤 우연으로 일어나는 사건들, 이 글을 쓰는 행위도 우연이지 않을 것입니다. 죽으면 끝나는 인생. 그러나 아주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우주의 에너지 기로 남을 것입니다. 아내가 쓰던 물건 아내의 기가 서려 있고, 내가 쓴 글에는 나의 기가 서려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주에서 발전하는 에너지의 일부분일 것입니다.
『영혼의 지문』 시집은 아내를 위해 썼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내는 보잘 것 없는 내가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무 쓰일 데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분명 아내는 이 시집을 읽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