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 채가 온전히 세계를 담아낼 수 있을까?
높은 벽으로 외부와 분리된 채 유리창 너머로 중정이 바라보이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중정 주택」, 영화 「나의 삼촌」에서 거실이 집안 전체를 감시하는 듯한 아르펠 씨의 집, 아이다운 천진함과 무질서가 지배하는 피카소의 아뜰리에, 예술 행위와 파티가 구분되지 않는 앤디 워홀의 로프트,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 「더 큰 첨벙」의 배경이 된 캘리포니아의 단순한 집…. 이 집들에는 어떤 세계가 담겨 있을까?
건축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집을 꼼꼼히 살펴보는 일은 커다란 즐거움일 것이다. 저자는 건축적 아이디어를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는 일곱 개의 주택을 안내자와 함께 찾아가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20세기 주요 사상을 가로지르며 펼쳐지는 이 주택 탐방은 집이 지어지던 시기의 사회상과 건축가의 사유를 살피며 당대의 사유가 어떻게 건축으로 구현되고, 라이프 스타일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다. 저자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 집을 제대로 ‘읽는’ 방식을 습득하고 나면, 집에 대한 독자들의 생각도 깊어질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범적인 가정
물질성과 가시성, 위생만을 강조하는 실증주의자의 집
저자는 현대 주거 문화에도 여전히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실증주의적 사고를 비판한다. 사람들이 집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본질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관한 대표적 사례로 자크 타티의 영화 「나의 삼촌」에 등장하는 아르펠 씨의 집을 예시로 들며, 그와는 완전히 다른 주거 공간 개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차례차례 나열해 보여준다.
피카소의 아뜰리에, 앤디 워홀의 로프트, 해체주의적인 노마드의 집과 호크니의 「더 큰 첨벙」에 그려진 집은 근대성이란 이념을 조롱하듯, ‘거주자의 창의적인 삶’이 구현되는 방식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저자는 이러한 주택의 배경이 된 철학적 비전을 제시하면서 모더니즘이 추구한 라이프 스타일과 당대의 건축 디자인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을 예리하게 분석한다. 아울러 건축가들에게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하길 권한다. 타인의 집과 그 안에 담긴 삶의 질서를 실제로 경험하게 되면 그 힘에 압도당한 나머지, 그동안 건축을 해오면서 얻게 된 고정관념을 모두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라는 관점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눈으로 관찰할 수 있고, 우리가 정말 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식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증주의가 도외시한 “바로 지금 여기”의 실존성
호크니의 그림 속 실용적인 집을 상상하며
건축과 철학적 사유를 연관시키면서 저자가 주목하는 사상은 실용주의다. 특히 실용주의적 주거 방식의 면모를 데이비드 호크니의 「더 큰 첨벙」이라는 그림을 통해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삶, 즉 〈굿 라이프〉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스페인의 저명한 건축가 알레한드로 데 라 소타는 “진정으로 건축을 즐기려면 가슴에 상상을 품고 여행하고, 또한 비상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권고했다. 이에 기대어 저자는 우리의 생각을 가두는 근대성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상상의 힘으로 새로운 삶을 향해 비상할 것을 독자들에게 주문한다. 옮긴이의 글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아서’는 역자가 애정을 기울여 쓴 장문의 역자 후기로서, 저자의 서술방식과 텍스트의 구조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굿 라이프』는 오늘날 건축이 우리에게 무엇이며 그 형식은 어때야 하는지, 건축이 과연 ‘굿 라이프’를 가능하게 하는지를 묻는 독자라면 꼭 손에 들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