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빛이 세상을 비추게 하라.
이것이야말로 모든 화가들의 의무다.”
물질적ㆍ정신적 곤란과 이겨내야만 했던 투쟁 속에서
꿈의 방향을 잃지 않은 고독한 예술가의 빛
‘빈센트 반 고흐’ 하면 우리는 보통 가장 먼저 ‘천재 화가’라는 말을 떠올린다. 천부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거침없이 화가로서의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고흐는 미술품 매매점 직원, 견습교사, 서점 점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고, 나중에는 신학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그림을 그리는 것에 관심이 생겼고, 20대 중반이 지나 전업 화가가 된다. 혼자 해부학을 공부하며 데생 작업을 하고, 어느 가난한 화가에게서 원근법을 배우면서 그림 그리는 법을 조금씩 익혔다.
고흐는 화가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해 얼마 안 된 시기에 만난 화가 라파르트와 5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반 고흐, 영원한 예술의 시작》은 그가 라파르트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책이다. 고흐는 받은 편지를 잘 보관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 날짜도 제대로 표기하지 않곤 했다. 불화로 인해 갑작스럽게 편지 교류가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라파르트가 1881년 9월부터 고흐에게 받은 모든 편지를 잘 보관한 덕에 우리는 젊은 예술가로서 고군분투하던 고흐의 또 다른 일면과 강인한 성품, 천재성의 진행 과정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어려움에도 예술적인 힘과 열정을 꿋꿋이 간직해야 하네.”
새로운 것을 그리고 싶었던 젊은 화가의 의지
고흐는 가난한 광부의 일상, 평범한 농부의 하루, 여름 저녁의 밀밭, 동네의 우체부 얼굴 등 민중의 삶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비록 상류 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길게 봤을 때 분명 높은 평가를 받게 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반 고흐, 영원한 예술의 시작》에는 고흐가 이렇듯 새로운 미술에 대한 확신을 갖기까지의 시간이 담겨 있다.
고흐는 라파라트에게 보낸 편지에 잉크, 분필, 크레용 등 새로 미술 도구를 접한 후의 기쁨과 사용 후 감상, 새로 시도하고 있는 그림 기법에 대한 생각, 많은 정보가 담긴 삽화 잡지 정보 등 화가끼리만 통하는 것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한다. 그의 후기 대표작 중 하나인 〈슬픔에 잠긴 노인(영원의 문에서)〉이 거의 10년 전에 시작된 〈피로에 지쳐〉 데생 시리즈에서 발전된 것임을 라파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고흐가 화가로서 얼마나 오랜 시간 꾸준히 노력을 기울였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 안에는 쓰레기 더미 안에서 그릴 것을 찾고, 무료 급식소 사람들의 모습을 스케치하는, ‘씨 뿌리는 사람’을 멈추지 않고 그리는 고흐가 있다. 그는 자신을 이해해줄 친구와 대화를 이어가면서 조금씩 평생의 취향, 영원히 그리고 싶은 것을 알아간다.
고흐는 라파르트에게 직접적으로 “고독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작업을 위해 농부들을 만나는 것 외에는 누구도 보지 않고 지냈다. 그렇지만 그는 타협하지 않았다. 오히려 “훗날 어떤 이들은 말과 반감과 무관심으로 나를 괴롭힌 걸 충분히 후회하게 될 걸세”라고 쓴다. 아직 인정받지 못한 젊은 예술가의 호기로운 외침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그 결말을 알고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나는 항상 내가 할 줄 모르는 것을 시도하네.”
고흐의 숨어 있는 명작을 전면 재배치한 개정판
고흐는 전업 화가로서 약 10년의 시간을 보내고 생을 마감했는데, 그가 남긴 그림은 800점이 넘는다. 산술적으로 1년에 80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다는 건데, 1880년대 초반이 그림 기법을 배우고 자신에게 맞는 도구를 찾는 시기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1880년대 후반부터 사망한 1890년까지 그의 창작열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반 고흐, 영원한 예술의 시작》은 기존 책을 개정하면서 대대적으로 고흐의 작품을 재배치했다. 책에 수록된 고흐의 편지는 1881년부터 1885년까지다. 그래서 편지를 쓸 당시 고흐의 작품들과 함께, 그의 예술혼이 불탔던 시기에 그린 많은 그림 중 국내 독자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후반기 명작을 함께 실었다.
고흐가 죽기 몇 달 전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너라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한, 분홍색 하늘을 배경으로 올리브 나무들이 가득한 〈올리브 따는 여인들〉, 고흐와 친하게 지냈던 우체부 룰랭과 그의 아기를 담은 초상화, 프로방스의 농가와 밀밭을 정겹게 담은 화사한 색채의 풍경화들, 그리고 화가가 되기 전인 1878년 스케치 〈라켄의 오샤르보나주 카페〉까지, 다른 책에서 보기 힘든 작품들까지 만날 수 있다.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잃지 않은 젊은 고흐의 글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흐르는 10여 년의 작품들을 보며, 우리는 고흐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천재성이 눈에 보인다면 바로 이런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