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불교의 중요한 두 가지 사유체계이자 수행체계인 유식불교와 선불교의 특징과 차이점, 그리고 이 둘을 바라보는 중도적 관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먼저 유식불교는 일체는 ‘오직 식(識), 즉 마음의 현현에 지나지 않을 뿐 인식되는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사유체계이며, 이 식을 지혜로 되돌려 고통을 소멸하고자 한다. 즉 분별을 본질로 하는 식을 무분별을 본질로 하는 지(智)로 전변하는 것이다. 전식득지가 곧 해탈이며 부처인 것이다. 그런데 전식득지의 길은 돈오(頓悟)가 아니라 지난한 점수(漸修)이다. 삼대아승기겁의 수행을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불교는 전식득지의 길, 해탈의 길, 성불의 길을 지난한 점수의 과정이 아니라 견성성불(見性成佛)의 돈오의 과정으로 제시한다. 견성성불이란 자신을 보는 것이 바로 부처가 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견성이 곧 성불인 것이다. 선불교는 언어문자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갖기 때문에 유립문자(有立文字)가 아니라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했으며, 이교전교(以敎傳敎)가 아니라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했던 것이다. 선불교는 더욱더 직절하게 마음이 곧 부처, 심즉불(心卽佛)이라 선언한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는 이 두 불교가 다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먼저 이 둘은 진실한 자기를 규명하는 길이라는 측면에서는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유식도 선종도 원래는 같은 좌선이다. 따라서 근본에서는 다를 수가 없다. 돈오점수(頓悟漸修)를 표방하고 견성한 뒤에 더욱 수행해 가는 길을 말하는 선과, 견도의 지위에서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실현한 뒤 십지(十地)의 수행을 완수하여 부처[佛]가 되는 길을 설하는 유식은 본질에 있어서는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선은 체험을 중시하고 그 체험의 한가운데서 언어를 발화한다. 체험을 체험 그대로 무엇인가 표현하려고 한다. 한편 유식은 체험한 세계를 논리적으로 정합적인 설명을 하고, 나아가 전체적으로 체계화하려고 한다. 거기서 논리적 객관성을 추구하여 만인이 수긍하는 불도(佛道)를 수립하고자 한다. 그러나 선은 체험의 직접성을 중시하고, 설명으로 이행되게 되면 그 핵심에서 멀어지리라는 것을 우려하여 피하려고 한다. 무분별지를 무분별의 세계 그대로 직접 전하고 체험하려고 한다. 기본적으로 그러한 차이가 양자 사이에는 가로놓여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양자는 본래 타자를 필요로 한다. 즉 선과 유식은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 손을 잡고서 불도의 본의를 규명해야만 하는 것이며, 서로 대립하기보다 상호 보완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유식불교와 선불교는 부처가 되는 것이 궁극이며, 다만 그 관점과 방법에 있어서 차이점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점수와 돈오, 유식과 선은 둘이 아니면서 또한 하나도 아니라는 불이불일(不二不一)의 중도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