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또 양반들의 삶 역시도, 중앙정치에서의 활동만으로는 충분히 이야기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가 편찬한 관찬 기록에서는 이들의 일상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그러한 식자층이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면서 주변의 이야기도 남겨 왔기에, 우리는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불교는 억불 정책과 유교적 공간 질서의 재편에도 불구하고 산사를 중심으로 신앙 및 의례를 정립했다. 태종의 불교 억압 정책으로 평지 사찰이 소멸하고 사찰의 경제 기반이 약화되었으나 산사는 불교 신앙과 수행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 지속되어 온 것이다. 산사에서는 유학자들과 승려들 간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산사가 학문적 담론의 장으로도 기능했다. 한편 당시 조선시대에는 시왕 신앙, 지장 신앙, 염불 신앙 등의 내세 신앙이 있었고, 수륙재와 우란분재 같은 의례는 현세와 내세의 구원을 위한 종교적 실천으로 민간에서 널리 시행되었다. “산사에는 왕실 구성원은 물론 양반부터 천민에 이르는 여러 계급의 사람들이 와서 다양한 불교 신앙을 염원했으며, 수륙재, 예수재, 사십구재 등 다양한 불교 재회와 법회가 사찰에서 열렸다.” 이 책을 통해 조선 불교가 유교적 사회 구조 속에서도 내세 신앙과 융합적 수행 방식을 통해 종교적·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대중과 승려 모두에게 중요한 종교적 역할을 수행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선과 교학의 공존과 승려 교육 과정, 선, 교, 염불을 함께 추구하는 삼문 수행체계, 산사에서의 신앙과 승려의 일상에 대해서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