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또 양반들의 삶 역시도, 중앙정치에서의 활동만으로는 충분히 이야기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가 편찬한 관찬 기록에서는 이들의 일상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그러한 식자층이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면서 주변의 이야기도 남겨 왔기에, 우리는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주변인으로 배치되었고, 여필종부나 남존여비와 같은 유교적 가치가 이를 뒷받침했다. 여성은 남편에게만 복종해야 했으나 남편은 여러 아내를 두는 것이 가능했다. 아내는 처와 첩으로 나뉘었다. 처는 명분상 남편과 지위가 동등했지만 첩은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었으며 남편뿐 아니라 남편의 처에게도 종속된 존재였다. 첩은 가족의 일부로 인정되었지만 계보나 권리에서 배제되거나 주변화되었다. 첩은 양첩과 천첩으로 구분되었는데, 양첩의 자식은 서자녀, 천첩의 자식은 얼자녀가 되었다. “유교 가부장제는 가족의 영속성을 보장해 주는 측면에서 처의 존재를, 생물학적 욕구를 실현시켜 주는 측면에서 첩의 존재를 배치했다. 이러한 유교 종법제의 처첩 구도가 조선시대 첩의 삶과 담론의 이념적 안내 역할을 한다.” 조선의 양반들이 첩을 두는 목적은 아들을 얻기 위한 것, 가사 관리와 수발을 위한 것,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으로 나뉘었다. 정실부인과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을 경우 첩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후사가 있는 경우에도 첩을 두는 경우가 있었다. “첩은 가족과 신분이 중층으로 얽혀 있는 여성 존재이면서 조선시대 여성 삶의 한 유형이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첩을 다각도로 읽어 내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