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와 PTSD, 회복탄력성에 관한 새로운 진실
20세기에 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 밖의 현대전을 거치며 등장한 트라우마 개념은 현대 정신의학의 확립과 더불어 PTSD, 외상후스트레스장애라는 진단명의 발명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우리 현대인은 트라우마 사건에 따른 극심한 스트레스는 반드시 장기적 트라우마와 PTSD를 남기며 무조건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른바 PTSD로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시행된 연구와 조사에 따르면 폭력적이고 치명적인 사건에 처했던 사람 중 대다수는 PTSD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트라우마를 유발할 가능성이 큰 사건, 곧 ‘잠재적 트라우마 사건’을 겪은 사람들 대다수는 여러 방식으로 고통받고 괴로워한다. 예를 들어 수개월 이상 트라우마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서서히 증상이 감소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스트레스 반응이 약했다가 점점 심해지기도 한다. 보나노 교수에 따르면 트라우마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 궤적을 따른다. 만성증상chronic symptoms 궤적, 점진적 회복gradual recovery 궤적, 그리고 ‘회복탄력성resilience’ 궤적이다.
놀랍게도 우리 중 절대다수가 단연 회복탄력성 궤적을 보인다. 트라우마성 스트레스를 합리적인 방식으로 잘 극복해나간다는 얘기다. 보나노의 오랜 연구에 따르면 ‘잠재적 트라우마 사건’을 겪은 사람 중 대략 3분의 2에 해당하는 사람이 장기적인 어려움을 ‘전혀’ 겪지 않고 상대적으로 빨리 정상 생활로 돌아갔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는 압도적인 ‘회복탄력성’이 있다.
치명적 역경을 통과하는 힘, 그 핵심은 ‘유연성’에 있다
보나노 교수에 따르면, 회복탄력성은 그에 대응하는 자질, 이를테면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의 다섯 가지 또는 일곱 가지 특징을 가졌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트라우마 사건을 겪은 뒤에 회복탄력성을 보이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고 어떤 특징이 회복탄력성과 연관이 있는지도 알지만, 그럼에도 어느 경우에 회복탄력성을 보일지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보나노 교수는 이를 ‘회복탄력성의 역설’이라고 명명한다.
40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보나노 연구진이 밝혀낸 외상후 회복탄력성의 핵심은 ‘유연성’이다. 유연성은 선천적 능력도 타고난 성격도 아닌 인간 마음의 자연스러운 특징이다. 유연성은 회복탄력성이 아니다. 유연성은 트라우마성 스트레스에 적응해서 ‘회복탄력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유연성이 있으면 회복탄력성을 증진시킬 특징과 행동을 각 상황에 맞게 활용할 수 있다.
유연성을 발휘하기 위한 동기부여 역할을 하는 ‘유연성 마인드셋’은 앞날에 대한 ‘낙관주의’, 자신의 대응능력에 대한 ‘자신감’, 위협을 도전으로 간주하는 도전지향성, 세 가지 믿음으로 구성된다. 이들 각각이 건강한 태도이지만 이들을 통합하면 더욱 큰 무언가, 즉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
무엇보다 유연성은 우리가 개발하고 학습할 수 있는 역량이기에, 유연성을 확보하는 과학적이고 단계적인 접근, 곧 ‘유연화 단계flexibility sequence’를 활용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맥락 민감성’으로, 앞뒤 상황을 파악하고 단서를 이해한다. 두 번째 ‘대응목록’ 단계에서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일뿐 아니라 할 수 있는 일까지 고려한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인 ‘피드백 모니터링’에서는 사용한 전략들의 효과를 판단해서 조정하고 바꿀 수 있다. 유연성의 핵심인 이 세 단계를 활용하면 누구든 최악의 사태에 대처할 힘을 찾을 수 있다.